송희영 논설주간

"무슨 재미로 장관하는지 몰라!"

전직 경제부총리가 후배 경제장관을 촌평하는 말이다. 안쓰럽다고 했다. 명색이 장관이 과장 인사까지 청와대 간섭을 받고, 산하 공기업 사외 이사에 자기 사람으로 집어넣을 힘조차 없다고 한탄했다.

대통령 주변에 이란 혁명정부의 지도자 호메이니처럼 위세를 떨치는 인물이 따로 있어 정책도, 인사도 다 그곳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돈 지 오래다. 한때 재정 정책을 손보려다가 '호메이니' 반대로 좌초했고, 금리나 환율까지 '호메이니'가 실무자에게 "잘 챙기라"고 압박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인사·정책에서 밀린 장관은 세미나에 참석, 축사나 읽는 의전용이 되고 말았다.

"한여름에 겨울 옷 입고 고생하네."

경기 흐름을 예측하는 어느 이코노미스트가 이렇게 내뱉었다. 올해 5.8% 성장을 전망하고서도 위기 때와 똑같은 정책을 고집한다고 비판했다. 위기 때 채택한 재정확대, 저금리, 고환율 정책이 경기 흐름에는 맞지 않는다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하반기부터 방향을 조금 틀겠다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벙커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연다. 유럽이 뒤숭숭하고, 부동산이 좋지 않아 건설업체 부도가 잇따르고, 서민경제는 여전히 나쁘니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부분적인 문제와 경제 전체의 돌아가는 판세를 구별 못 하고 있다. 고기를 굽다 보면 먼저 타버리거나 덜 익은 덩어리가 있기 마련인데, 줄기차게 가열(加熱)해 전부 태우는 꼴이다.

"백미러만 보고 운전하나?"

경제학자가 복고풍 정책을 지적한 말이다. 대운하·4대강·세종시 같은 거대 토목공사만이 과거형 정책은 아니다. 재벌 우대, 수출기업 우선 지원, 부자 감세(減稅) 정책도 고도성장 시대에 무척 애용하던 유물이 되살아났다.

과거 성공했던 정책을 그대로 재활용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앞길을 주시하며 신기술을 개발하고 신종 산업을 일으켜야 할 때 불도저 소리만 요란한 경제가 되고 말았다. 위기에서 벗어난 작년 하반기부터 2~3년 기간이 신천지를 개척하며 경제 몰골을 수술할 기회이건만 여태 국민들에게 꿈을 심어줄 경제 비전은 나오지 않고 있다. 7% 성장, 1인당 소득 4만달러, 세계7대 경제강국으로 가겠다고 허풍 치던 정권 초기의 모습이나마 이제는 그리워진다.

"재벌만 영원하냐. 모피아도 영원하다."

한국 경제 생태계에서 생명력이 강한 존재는 재벌만이 아니라고 어느 금융계 인사가 말했다. 과거 재무부 관료 출신 집단인 속칭 '모피아 세력'도 쉽게 죽지 않는 불사조다. 이미 대통령 측근 자리와 경제장관직을 장악하고, 주요 금융회사 고위직과 관련 단체장 자리까지 싹쓸이하고 있다.

괜찮다는 사장 자리가 나타나면 모피아끼리 경합하고, 자기들끼리 충돌이 심해지면 다른 모피아가 중재에 나선다. 어쩌다 자리다툼에 다른 직업 출신이 끼어들라치면 또 다른 모피아가 '이물질' 제거에 앞장서는 풍경이 이어진다. 12년 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외환위기도 다 모피아의 실패로 온 나라가 멍들었지만 그 위세는 꺾이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은행과의 전투에 능하고 최고 권력자의 귀를 장악하는 기교가 빼어나다. 그러나 거시경기 추세를 제대로 읽는지 불안하다고들 한다. 고집불통의 정책이 그대로 가는 이유도 모피아가 최고 권력자 주변을 지배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모피아는 또 한 번의 외환위기를 준비하는지 모른다. 모피아 출신이 청와대 경제수석이 되더니 외환시장(선물환)부터 규제하기 시작했다. 민감한 부위(部位)를 섣부르게 만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리(代理)급만 득실거려요. 총수급(級)은 안 보이고…."

어느 그룹 회장은 이 정권에 창업자나 그룹 총수다운 배짱과 대담한 돌파력을 가진 인물이 없다고 걱정했다. 인사를 과단성 있게 하지 못하고, 아랫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하지 못한 채 자질구레한 일까지 지시하는 것은 '고용 사장'의 전형적인 리더십이다.

대통령 직속 경쟁력강화위원회가 기업 애로를 직접 접수해 해결에 앞장서고, 엔지니어링산업 육성, 생태평화벨트 조성 같은 일까지 하겠다고 야단이다. 10년 후 한국 경제를 담은 큰 그림은 보여주지 못하면서 고작 부처가 할 일을 대신한다. 대리급이 회장에게 '부지런히 뛴다'는 인상을 심으려고 안 해도 될 일까지 챙기는 행동과 똑같다.

3류 월급쟁이 사장일수록 휴일에도 출근하고 일부러 소형차를 몰며 경비를 아끼는 척 궁상을 떠는 재주가 있다. 요즘 청와대 참모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