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의 제물로 삼고자 하는 나이지리아아르헨티나에 0대1, 그리스에 1대2로 져, '2패'로 벼랑 끝에 서 있다. '조별리그 이후 16강 토너먼트'로 경기 시스템이 확립된 1986 멕시코월드컵 이후 조별리그에서 내리 2패를 당한 팀이 16강에 진출한 경우는 전무하다. 나이지리아가 이런 역사를 안다면 23일 한국전에서 무기력한 경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한국팬의 바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가 한국전에서 바람 빠진 경기를 할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 나이지리아는 2패를 했지만, 아직 16강에 오를 가능성이 남아있다. 아르헨티나가 그리스와의 3차전을 이긴다고 가정할 때, 나이지리아는 한국을 꺾기만 하면 16강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봐도 1994 미국월드컵 이후 2연패에 빠졌던 팀의 3차전 결과는 8승5무9패로 승패가 엇비슷했다.

나이지리아의 경우와 달리 '2패의 팀'이 설혹 16강 진출이 이미 좌절된 경우에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왜 그럴까.

한덕현 중앙대 의대 교수(스포츠정신의학 전공)는 '취소(undoing) 방어기전(mental defense mechanism)'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로 그 같은 경향성을 설명했다. '현재 불안정하다고 생각하거나 본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면, 아예 그것을 없애버리고 싶은 심리'가 바로 '취소 방어기전'이다. 한 교수는 "이런 '취소 방어기전'은 많이 창피한 상황일수록 더 심해진다"면서 "2패를 당한 팀들은 이런 심리상태가 강해져 이전 경기의 창피함을 한 번의 승리로 만회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고 말했다. 이런 각오로 뛸 경우 부담감도 줄어들고 집중력도 좋아지는 등 앞서 패했던 2번의 경기와는 다른 전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월드컵에 출전할 정도면 2패를 당한 팀이라도 세계적 프로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 몸값을 높이거나, 조국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현실적인 목표' 때문에라도 3차전에서 필사적으로 뛰는 경우가 많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나이지리아 선수 중에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몸값을 올리려는 선수가 많다"며 "이들은 16강 진출에 상관없이 한국전에 의욕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한국팀이 이를 악물지 않으면 자칫 나이지리아에 일격을 당할 수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