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 정치부 차장대우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이 14일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을 상대로 조사결과를 브리핑했다. 북한도 이 자리에서 "우리가 전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니 우리가 피해자"라는 주장을 폈다. 이미 중국의 애매한 반응에서 경험했지만,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 장병 46명을 잃은 우리의 안타까운 심정과는 약간 다르다. 유엔에선 '사실'과는 별개의 또 다른 '국제정치'가 있다. 인내심을 요구하는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제사회에 우리 입장을 납득시키려면 과학적인 조사를 국가적 신뢰로 뒷받침해야 한다. 중앙의 권력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는 국제무대에서 그 누구도 우리의 안보 이익을 제 일처럼 지켜주지 않는다. 그런 현실을 알기 때문에, 평소엔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선진국 여·야 정치인들도 안보문제가 걸리면 '초당적 협력'의 깃발 아래 힘을 합해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외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쉬운 게 이런 문제라는 걸 알기 때문에 총력전을 벌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엔 '초당적'이란 단어가 없다. 일단 야당에선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민·군은 물론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외국 전문가들까지 참여한 조사결과를 인정해 외국 의회에선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나오는데, 우리 야당에선 "북한의 어뢰공격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니 조사를 더 해보자"고 한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최근 "우리가 정부 발표를 부인하진 않는다. 현재는 정부가 북한이 했다니까 그럼 북한이 했다고 치자"고 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믿지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더 조사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끝까지 애매하게 꼬리를 남긴다. 북한의 '불바다' 협박을 비판하면서도 '정부가 잘못해서 북한이 저러는 것'이란 논리를 덧붙인다.

야당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을 위해 뛰는 정부를 '초당적으로' 밀어줄 가능성은 없었다. 대신 '조사를 왜 서두르느냐. 미국의 9·11 테러 땐 3년 걸려 조사결과가 나왔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미국은 9·11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여·야는 그야말로 초당적으로 정부를 지원했다. 9·11 조사위의 활동은 나중에 미국이 왜 그런 테러공격에 취약했는가를 포괄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야당은 감사원의 '천안함 침몰사건 대응실태' 감사 결과를 근거로 군을 비판하고 있다. 감사원의 조사로는, 군은 천안함으로부터 "어뢰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받고도 상급기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또 사건 당시 속초함이 "북 신형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는데, 2함대가 이를 상부에 '새떼'로 보고하도록 지시해 '허위보고'를 한 게 됐다. 야당이 감사원 감사 결과를 믿는다면, 그건 천안함 침몰의 진실, 즉 '북한의 어뢰공격'이라는 걸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야당 정치인들의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짜집기식' 대응은 계속되고 있다. 정말 이 땅에선 '초당적 안보'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로 전사한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가 최근 청와대에 1억원의 방위성금을 기탁하면서, "정치하시는 분들은 제발 안보만큼은 하나 되고 한목소리가 돼 주시기를 부탁한다"고 했다. 정치인들에게 이만큼 뼈아프게 '초당적 협력'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목소리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