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보〉(126~135)=컴퓨터 인공 지능이 바둑으로 인간 최고수를 이기는 날이 올까. 현재로선 "오지 않는다"는 쪽이 우세하다. 바둑판 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 계산조차 못 해내는 상황에서 컴퓨터의 인간 정복을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 동양 3국에서 수천년 동안 두어진 바둑이 수십억 판도 넘을 텐데 그 중 같은 판은 하나도 없었다고들 말한다. 검증 불가능한 이 가설이 누구도 의심치 않는 정설(定說)이 된 것은 비좁아 보이는 바둑판 속에 워낙 광대무변한 우주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126으로 공배를 채운 뒤 128로 젖히고 보니 좌하 쪽 흑 대마가 암담해졌다. 탈출은커녕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다. 129, 131은 출구(出口)를 찾아나섰다기보다는 수를 늘리려는 의미. 고심 끝에 133으로 보강했다. 하지만 134로 틀을 갖추고 나니 수상전으로 이 백을 잡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133으로 여유를 부릴 게 아니라 '가'에 두어 곧바로 조여가는 수는 어땠을까. 참고도를 보자. 7까지 필연의 수순을 거쳐 백8이 이런 경우의 급소. △가 응원하고 있어 12마저 선수(先手)가 돼 14까지 백은 두 눈을 내고 깨끗이 살아버린다. 거듭되는 고전 속에서 흑은 135로 끊어 무언가를 노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