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한 산악의 전설과 동네 산 마니아가 만났다. '엄대장' 엄홍길(50)과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옥주현(30)이다. 옥주현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공연 없을 땐 매주 산에 오른다. 작년 이효리와 함께 산에서 찍은 사진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전혀 다른 이력의 두 사람이 '산' 얘기로 만났다.

옥주현=불교신자인 부모님을 따라 네살 때부터 매주 일요일 오대산 절에 다녔어요. 한 30분쯤 올라갔던 것 같은데, 어린 마음에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엄홍길=저도 세살 때부터 의정부의 원도봉산 산골짜기에 살았어요. 학교 가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죠.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고, 산도 싫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산이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무서운 속도로 빠져들었죠. 두꺼비처럼 암벽을 등반하면서 산악인의 길에 들어섰어요.

옥=성악 하던 고등학교 때, 아차산 근처에 살면서 일요일마다 식구들과 올라갔죠. 중간쯤 가면 더는 못 가겠더라고요. 그때 몸이 육중해서…(웃음). 그러면 어머니가 "여기서 이어폰 끼고 크게 노래 연습을 하라"고 하세요. 나중에 대중 앞에서 노랠 불러야 하니 필요하다면서. 박세리씨 아버지는 딸을 묘지에도 보냈다던데, 저희 어머니도 이상한 스파르타의 피가 있었나 봐요. 너무 창피해서 사람들 등지고 눈 감고 불렀어요. 10여년 전, 아차산에서 노래하던 뚱뚱한 애를 기억하신다면 그게 저예요.

엄홍길과 옥주현은 서울 도산공원을 거닐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산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산에 관한 얘기는 화창한 햇살과 신록만큼이나 시종 밝고 경쾌했다.

엄=우리 모두에게 산이란 존재가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영향을 미쳤나 보네요.

옥=그렇죠. 요즘도 북한산에 올라가서 사람 없을 때 노래해요. 사실, 산에서 노래 연습하면 정말 노래를 못하는 것처럼 들려요. 울림이 없고 소리가 그냥 흩어지거든요. 겸손해지죠. 사람이 화장하면 거만해지고 아침 화장실에서 자기 얼굴 보면 겸손해지듯이.

엄=히말라야 등정에 38번 도전해서 18번 실패했어요. 자연 앞에서 오만해지면 절대로 산이 내버려두지 않아요. 요샌 주로 어느 산 타세요?

옥=전에는 청계산 자주 갔는데, 자꾸 가니까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요샌 주로 북한산 가요. 돌이 많아 겨울엔 좀 위험하지만.

엄=삼각산이라 그래요. 코스 따라 다르죠. 주로 어느 코스로?

옥=그때그때 컨디션 따라 다른데, 이북5도청 건너편에서 오르기도 하고….

엄=아, 사모바위 있는 쪽.

옥=네, 맞아요. 또 그 세검정 근처에 지하 암반수를 쓰는 목욕탕이 있는데, 거기도 자주 가요.

엄=산행할 땐 일부러 덥게 입는데, 땀 좍 흘린 후 목욕하면 정말 개운하죠.

옥=다른 즐거움도 있어요. 어느 산 중턱엔 막걸리 파는 데가 있는데, 거기 플라스틱 3단 서랍장이 있어요. 열면 양파랑 멸치랑 고추가 좌악 나오죠. 술을 잘 못하는데, 산에선 참 감칠맛 나더라고요.

엄=원래는 산에서 술 마시면 안 됩니다. 고산 등반할 땐 정말 위험하죠. 하지만 베이스캠프까진 다양한 술을 다 갖고 가요. 맥주·위스키·막걸리·소주를 가져가서 맛보는 정도로만 마시죠. 그럴 땐 술이 약이 돼요.

옥=국내에선 어느 산을 타세요?

엄=제가 삼각산 골짜기 밑에 살아요. 10분만 걸어가면 바로 산이에요.

인생을 산악인으로 산 엄홍길과 산에서 노래하며 데뷔를 꿈꿨던 옥주현은, 이제 또 다른 '산'에 도전 중이다. 2008년 NGO '엄홍길휴먼재단'을 세운 엄홍길은 지난달 5일 네팔 오지 마을 팡보체에 휴먼스쿨을 세웠다. "이제 제가 오를 고산은 없어요. 그렇다고 도전이 끝난 건 아니죠. 제 인생의 또 다른 8000m, 사람의 산에 오를 거니까요."

가수로, 뮤지컬 배우로 일찌감치 성공한 옥주현도 등산을 통해 '삶의 산'을 배운다. "옛날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할 때 한 게스트가 그랬어요. '산에서 내려올 걸 왜 오르느냐'고. 제가 그랬죠. '그럼 쌀 걸 왜 먹어?' 음식이 영양분이 되듯, 산도 비슷해요. 게다가 등산이 삶과 비슷하지 않나요? 목적지를 정해두고 가도, 목적지는 보이지 않아요. 나무에 가려져 있거나, 많이 온 줄 알았는데 요만큼밖에 안 왔다거나, 죽을 것처럼 숨이 찬데 그새 도착해 있거나."

헤어지기 전, 엄홍길이 제안했다. "같이 도봉산 한번 타시죠. 정말 좋은데." 옥주현이 대답했다. "좋죠. 좋은 길 좀 많이 가르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