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6월 나치 독일의 잠수함들이 영국의 선박들을 잇달아 침몰시켰다. 같은 달 22일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했다. 9월에는 나치 잠수함이 미국 구축함을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 대부분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4분의 3은 참전(參戰)을 반대했다. 국민들은 히틀러의 패망을 바라면서도 전쟁에 개입하지 않기를 열망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여론의 지원 없이는 전쟁의 위험을 무릅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응전(應戰)하지 않는다면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추축국의 도발행위는 계속될 것이었다. 그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들을 직접 설득했다. 독일 잠수함을 '대서양의 방울뱀'이라고 부르면서 "미국 군함이 독일 잠수함을 발견하면 목격 즉시 발사하도록 명령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선전포고를 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해전을 개시하는 편법을 동원한 것이다. 미국 국민들은 루스벨트의 '목격 즉시 발사' 방침에 대해 지지를 보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전 대통령.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은 1941년 12월 7일 동이 튼 직후 일어났다. 일본의 뇌격기(어뢰를 물에 떨어뜨려 군함을 공격하는 비행기) 한 대가 폭음을 울리며 돌진해온 것을 신호로 폭격기들이 새까맣게 날아와 미국 하와이 진주만 기지에 공격을 퍼부었다. 갑작스러운 공습에 미국의 태평양 함대는 초토화되었다. 미국 국민들은 물론 정치인들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루스벨트는 침착한 태도로 긴급 양원 합동회의에 나가 말했다. "현 상황에 대해 책임 소재를 따질 것이 아니라 미국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본질적인 사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는 의회에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요구했다. 미국 도처에서 지지 서약이 쇄도했고, 루스벨트는 미국의 방위를 넘어서는 고결한 목적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본질적인 4대 자유 즉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에 바탕을 둔 세상을 창조하자고 선언했다.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으로 1930년대 뉴딜정책을 통해 대공황을 맞은 경제를 살리고, 세계 2차대전이라는 위기를 돌파한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활동을 그의 임기 12년간에 초점을 두고 서술한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루스벨트에 대해 유권자와의 신뢰를 중요한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혜택받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고자 한 '다원주의 리더십'의 소유자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루스벨트는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같은 조직에 넣는 일이 많았고, 확고한 교조주의적 의견을 가진 이들보다 현실을 받아들여 타협할 줄 아는 이들을 존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스벨트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루스벨트가 2인자 지위를 갈망하던 사람을 무조건 면직시키는 경향이 있었으며, 합리적 관리 시스템을 세우지 않았다는 여러 학자들의 비판도 함께 소개해 균형을 잡는다.

루스벨트는 "자격이 된다면 소속 정당을 따지지 않고 기용하지만 자격이 안되면 동료 의원이라도 기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행정부에 맞서는 사람은 기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에 거스르는 사람은 가차없이 버렸고, 때로는 가혹하고 노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루스벨트 자신도 진보적 정치인이었지만 그는 가능한 것 이상을 요구하는 진보주의적 정치인들을 동맹자로 신뢰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적대자들로부터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연방 대법원을 개혁하려는 루스벨트의 시도는 이런 비난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는 뉴딜 법안이 위헌이라고 판결하는 대법원에 대해 근본 문제는 헌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판사들의 헌법 해석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대법원 판사 수를 늘려 총 판사가 15명을 넘지 않는 선에서 대통령이 최대 6명까지 추가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대법원 정비안을 만들었다. 결국 대법원은 뉴딜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미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새로운 헌법을 원하지 않았지만 비대해진 법원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뉴딜 지지라는 대법원의 입장 변경을 환영했다.

네덜란드계 이민자 후손인 루스벨트의 이름은 '장미꽃밭(rose field)'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루스벨트는 자신의 이름처럼 장미꽃 같은 비전을 가지고 때로는 날카로운 가시를 이용하여 어려운 위기를 돌파했다. 저자는 "루스벨트의 대통령 재임은 전례 없는 영역에서 전례 없는 기간 동안 지속된 위기에 대해 미국 대통령으로서 창의적인 대응을 보여준 멋진 모범이었다"고 평가한다. 가시만 있고 장미꽃은 없거나 장미꽃만 바라고 가시의 역할을 부인하는 정치인들의 일독(一讀)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