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망원동 한 상가건물 지하 1층. 유명 트로트 여가수가 춤을 연습하던 이 36평 공간에 올 2월 인공위성 제작 연구소 'OSSI'가 들어섰다. 모형이나 어린이 장난감이 아니라 우주로 발사할 실제 인공위성 연구소다.

문을 열자 어지럽게 널려있는 전선·회로기판 너머로 컴퓨터 모니터 4대가 보였다. 책장에는 디지털 프로세싱, 생체신호처리, 현대 물리학 같은 책이 빼곡했다. 그때 장발(長髮)에 뿔테 안경 쓴 남자가 나타났다.

티셔츠를 황급히 꿰어 입던 그가 햄버거 포장지, 식은 커피잔을 주섬주섬 치우며 말했다. "아직 집을 못 구해 여기서 먹고 잔다." 작가 송호준(32)의 작업실이다.

'OSSI'는 '오픈소스 인공위성 구상(open source satellite initiative)'의 줄임말이다. 연구소가 쏘아올릴 인공위성 정보를 모두 공개하겠다는 뜻이다. 형광등 불빛 가득한 지하에서 30대 괴(怪)청년이 우주 정복에 나선 걸까?

송호준은 공대 출신 예술가다.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를 2005년에 졸업하고 한국정보통신대학(카이스트로 통합) 디지털미디어랩 석사과정을 밟다 2년 전에 그만뒀다. 그는 과학 기술로 예술품을 만들어낸다.

대학 3학년 때까지는 오직 스노보드에 빠져있는 기계치였다. "컴퓨터 프로그램 하나 깔 줄 몰랐다"고 했다. 외우는 건 잘해서 수업을 그럭저럭 따라갔다. 송호준은 졸업 전 실습수업에서 납땜하다 깨달았다.

송호준에게“기타를 무릎에 받치고, 인공위성 발사 스위치를 가슴에 차고, 인공위성을 왼손에 가볍게 든 다음 활짝 웃으라”고 주문 했다. 그는 진땀을 흘리며“OSSI 계획을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이것쯤이야…”라고 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는 미디어 예술·과학을 접목한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다니면서 위성 개발업체에서 인공위성 설계를 익혔다. 5년 전부터 '정체불명의 기계'를 구상해 작품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송호준이 지름 80㎝·무게 150㎏짜리 알루미늄 합금 구(球)를 가리켰다. 작품명,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2006).' "대량살상무기에 맞서는 대량행복무기다. 핵 낙진에도 녹아 버리지 않을 작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 육중한 구는 핵 공격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방사능을 감지하는 순간 붉은 빛을 내며 작동한다. 구에 뚫린 일(一)자 구멍에서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등 아름다운 말이 영수증 용지에 찍혀 나온다.

송호준의 관심사는 과학 기술이 만든 폭력과 권위주의를 꼬집는 것이다. "지식·기술을 독점해 권위적 태도를 갖는 일이 과학 분야에 특히 많다." 그가 책장에서 우라늄 원석(原石)을 꺼내더니 "만져보라"고 권했다.

"가공 전 우라늄은 생활 방사능 수준의 돌이다. 나는 이 방사능 보석(寶石)으로 핵이 아닌 팔찌를 만든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걸 차고 죽음을 시음(試飮)했으면 한다. 삶의 소중함을 느끼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인공위성은 왜? 송호준은 "감히 접근할 수 없었던 우주 공간에 망원동 지하에 사는 가난한 작가가 '큐브샛(cube sat)'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계획"이라고 했다.

큐브샛은 가로·세로 10㎝, 무게 1㎏쯤 되는 소형 인공위성이다. 1999년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과 스탠퍼드대학이 처음 쐈다. 학문적인 용도로 쓰이는 데 최근 민간기업, 미 정부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큐브샛은 시중에 나온 조립세트가 1500만원 정도고 속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개발비까지 합치면 20억~30억원대 프로젝트다. 송호준이 직접 제작한 인공위성 재료비는 20만원.

로켓 발사비용을 줄이려고 대형 로켓에 얹어 가는 방법도 고안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매년 봄 열리는 큐브샛 학회에 두 번 참석해 프랑스 로켓 회사와 가계약했는데, 이렇게 줄인 발사비용이 1억원이다.

송호준은 "인터넷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거기에 모든 정보가 있는데 다만 어떻게 조합할지 몰라 자료 수집에 3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이달 중순부터 인공위성 티셔츠를 3만5000원에 팔기로 했다. 이걸로 발사비용 댈 요량이다.

송호준은 지난달 OSSI 계획을 미국 MIT 미디어랩 콜로키움에서 발표했다. '송호준식(式) 설계법'으로 너도나도 위성을 쏘아 올리면 우주가 쓰레기장으로 변하지 않을까? 송호준은 "문화운동도 함께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작업실 한편에 줄 대신 버튼·터치패드가 달린 기타가 보였다. 송호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유명 뮤지션이 상상 속 악기 7종을 의뢰했었다. 연구비 보태려고 나섰는데 늦게 만들었다고 돈을 안 준다고 해서 하나 도로 가져왔다. 이후 순수하게 티셔츠 모금해야겠다고 맘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