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강릉 잠수함침투 사건 당시 무장간첩 중 유일하게 생포된 이광수(46)씨가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은 날조"라는 북한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씨는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단이 명확한 증거를 내놓았음에도 국내에서 의혹이 끊이질 않는 모습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며 "북한이 '천안함 사건은 날조'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더 이상 침묵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군관(장교)인 상위 계급이었던 이씨는 당시 북한 정찰조를 싣고 온 잠수함(상어급)의 조타수였다. 체포 이후 이씨는 국내에 정착해 2005년 경남대에서 석사학위를 수여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내외 언론에는 14년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북한에는 130t 연어급 잠수정이 없다?

이씨는 “130t 연어급 잠수정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북한 국방위 주장부터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130t 연어급 잠수함을 여러 번 직접 봤다”며 “로미오급부터 극소형 잠수함까지 조타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연어급은 유고급을 개조한 것으로 보면 된다”며 “유고급은 어뢰 발사관을 가지고 있지만 연어급은 발사관이 없어 좌우에 중어뢰를 직접 거치하고 전기 충격을 가해 어뢰 공격을 감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함경남도 마양도 해군 4전대에 있는 잠수함 수리소에 들어가면 북한 잠수함 집합소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이곳에서 130t급을 비롯해 로미오급까지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씨에 따르면 북한은 로미오급, 상어급, 연어급, 유고급이라는 명칭 대신에 대형, 중형, 소형, 극소형이라는 명칭을 쓴다. 천안함을 공격한 130t급은 ‘소형’에 해당한다.

그는 “130t 잠수정이 1.7t 중어뢰를 싣고 ‘ㄷ’자형으로 기동해서 공격하고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북한 국방위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씨는 “어선으로 위장한 모선과 함께 움직인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고깃배로 위장해 서해 근해까지 침투한 다음 잠수함을 침투시키면 남측에서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이번 합조단의 발표처럼 일반 어선으로 위장해 백령도 근해까지 왔다가 잠수정을 침투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고깃배로 위장하고 내부를 잠수함 탑재용으로 개조한 모선을 직접 봤다고 했다. 이씨에 따르면 북한은 함경남도 락원군(퇴저군) 세포리에 정찰국 3기지 ‘모선-자선’ 부대를 두고 있다. 이씨는 이곳에서 당시 북한이 직접 건조한 위장 모선을 봤다고 했다.

이씨는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마자 북한 소형 잠수함의 행위임을 직감했다. 대형 잠수함의 어뢰 공격은 소음 때문에 발사 즉시 위치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뢰 가능성에 대해서도 “음향식 기뢰 설치가 극히 어렵고 기뢰 폭발력이 이번 어뢰의 5배가 넘기 때문에 파괴된 천안함 상태로 봤을 때는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1번’은 북한에서 쓴 것이 아니다?

이 씨는 우리 합조단이 결정적 근거로 제시한 ‘1번’이라는 글자에 대해서도 북한의 행위를 밝히는 핵심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어뢰도 손수 정비를 하는데, 정비를 하기 위해서는 어뢰를 분해한다”며 “분해하다 보면 부품을 분실하거나 타 어뢰 부품과 혼동할 수 있어 번호를 적어놓고 어뢰별로 부품을 맞춰 놓는다”고 했다. 이어 “잠수함을 부를 때는 ‘호’라는 명칭을 썼지만 어뢰 부품을 수리하기 위해 표시할 때는 일반적으로 ‘번’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증거물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장담했기 때문에 ‘오리발’ 작전이 가능하다고 봤을 것이다”면서도 “남측이 침몰된 함수와 함미를 대형 쇠사슬로 끌어올리고 쌍끌이 어선까지 동원해 증거물을 찾아내자 크게 당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이번 천안함 격침을 주도한 조직은 정찰총국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해군은 전면전을 할 때 임무를 받아 움직이고, 장비나 훈련 면에서 정찰총국을 따라가지 못한다”라며 “작전 성공을 위해 정찰총국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또 “실무지휘는 정찰총국장 김영철 상장이 했을 것”이라며 “이는 김정일의 재가를 얻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강릉에 침투하기 직전의 상황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정찰국장이었던 김대식이 모든 지휘와 훈련을 감독했다. 파견 며칠 전에는 김대식이 직접 김정일의 친필 서신을 읽어주고, 양주를 따라 주면서 '성공하고 돌아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북한이 어뢰나 잠수함을 수출하기 위해 카달로그를 제작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북한 함경남도 신포 조선소 근처 '봉대보일러공장'으로 위장한 잠수함과 공기부양정 건조공장에 쿠바 사람들이 방문한 모습을 보고 현장 관계자에게 물으니 "잠수함 수입 때문에 방문차 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가 지나치게 북한에 동정적”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이유는 '대청해전 때 당한 망신을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단언했다. 김정일이 남한에 복수해 군과 간부층에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씨는 북한은 서해 NLL을 차지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도발을 하는 것은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는 "정찰국에 있으면서 'NLL을 수복하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그러다가 수상함으로 패배하니까 자신의 강점인 잠수함으로 복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조사 결과를 두고 여전히 의혹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물론 생각은 자유지만 좀 뭐랄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다”며 “남한 군 장병 46명이 죽었으면 원인을 규명하고 그 행위를 저지른 자들을 벌해야 하는데 이런 데는 관심이 없고 정부를 의심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 잠수함 운전수인 나도 납득이 가는 사실에 대해 왜 평범한 국민들은 납득이 안 가는지 모르겠다”며 “남한 사회가 지나치게 북한에 동정적인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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