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justice)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해진다.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뿐인데 왜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그 질문을 받는 순간 그것을 '당신은 정의롭게 살고 있는가?'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번역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또 정의를 다룬 책을 좀 읽은 사람들은 이 질문을 받는 순간 골치가 아파진다. 정의(正義)에 관한 명쾌한 정의(定義)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빈도에 비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빈도가 한참이나 낮은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정의와 올바름, 정당함, 공정함을 캐묻는 사상가들이 있다. 그들이 정의를 묻는 것은 정의(正義)의 정의(定義)가 궁금해서라기보다 사회가 보다 정의로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공동체주의자'라고 부른다. '덕의 상실'(이진우 옮김, 문예)의 알래스데어 맥킨타이어, '마르스의 두 얼굴'(권영근 등 옮김, 연경문화)의 마이클 월저, '불안한 현대사회'(송영배 옮김, 이학사)의 찰스 테일러, 그리고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정치철학)가 그들이다. 맥킨타이어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덕성(virtue) 회복을 통해, 월저가 '정의로운 전쟁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통해, 테일러가 이기심과 허무주의에 빠진 현대사회의 '그릇된' 지적 문화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통해 정의 회복을 꿈꾸었다면, 샌델은 우리를 곧장 다양한 쟁점들이 부딪치고 있는 일상현실 속으로 밀어넣는다.
2004년 여름 허리케인 찰리가 미국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갔다. 전력부족으로 냉장고나 에어컨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주유소로 몰려들었다. 얼음주머니를 사기 위해서였다. 주유소는 평소 2달러인 얼음주머니를 10달러에 팔았다. 250달러 하던 가정용 소형발전기는 2000달러로 뛰었다. 이런 바가지요금 업자들을 한 일간지는 '폭풍 뒤에 찾아온 약탈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시장주의 혹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기사를 반박했다. 기존의 가격은 '어쩌다 익숙해진 가격 수준'일 뿐 도덕적으로 신성한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상황에 따라 높여 받았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은 "얼음·생수·발전기 등의 가격이 높아지면 수요자는 소비를 억제하고 공급자는 피해지역으로부터 먼 곳에서까지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려는 욕구가 높아져 곧 '정상'을 되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재난지역에서 가격폭리금지법을 입법하는 행위는 정의로운 것인가 정의에 반하는 것인가?
저자는 '바가지요금 사태'를 통해 정의를 바라보는 데는 세 가지 입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는 행복 극대화가 정의라는 입장으로, 제레미 벤덤이나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공리주의가 그것이다. 또 하나는 개인의 자유(혹은 자율) 존중을 정의로 보는 입장으로, 존 로크나 칸트가 기초를 마련했고 20세기 들어 존 롤스가 '정의론'을 통해 설파한 견해다. 세 번째는 덕성 추구를 정의로 보는 입장으로, 저자를 포함해서 앞서 언급한 공동체주의자들이다.
이어 본격적인 질문던지기가 시작된다. 먼저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한 질문던지기다. 신체적 손상이 아니라 정신적 손상, 즉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참전군인은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 금융위기의 '주범'들이 거액의 상여금을 받는 것은 정당한가? 2005년 6월 미해군 특수부대원 4명은 정찰임무 중 100마리 염소를 모는 열네살짜리 아이를 발견했다. 논쟁 끝에 그를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한 시간 반 후 이들은 탈레반에게 포위됐고 총격전 끝에 3명이 사망하고 이들을 구출하려던 헬기까지 격추돼 16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아이를 살려준 결정은 올바른 것이었는가?
가정(假定)의 질문은 더 곤혹스럽다. 국가가 결혼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한가? 동성애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결혼의 다양화가 그 이유라면 일부다처(一夫多妻)나 일처다부(一妻多夫)를 허용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그렇다고 이 책이 마구잡이식 질문집은 아니다. 분배의 불평등, 교도소의 민간운영, 소수집단 우대 정책, 징병이냐 고용이냐를 둘러싼 병역논쟁 등 다양한 쟁점들을 공리주의적 시각과 자유주의적 시각으로 정리한 다음 조심스럽게 자신의 공동체주의적 주장을 암시한다. 그리고 전체 10장 중에서 2장이 벤덤과 밀의 공리주의, 5장이 칸트의 동기주의, 6장이 롤스의 자유주의, 8장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성 강조로 구성돼 있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정치철학자로서 샌델은 도덕이나 종교로부터 독립을 내세우는 정치에 비판적이다. 그가 공리주의나 자유주의 정의론에 비판적인 이유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功利)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는 오히려 시민들이 도덕이나 종교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좋은(정의로운)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이견(異見)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꿔야 한다.
이제 샌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자들의 약점을 지적할 차례다. '당신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덕성이란 무엇인가?' 덕성의 내용이 공허하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강점은 분명하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즉 정의의 정의(定義)를 향한 지적 모험을 감행하도록 강력하게 유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샌델의 '정의(Justice)' 강의는 해마다 1000여명의 학생들이 듣는 하버드대 최고의 인기강의이며, 이 책은 20년에 걸친 강의를 토대로 집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