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쁜 짓 못하고 살게 됐으니 책임지시게!" 수화기 너머 강경환(51)이 말했다. 작년 4월 충남 서산에서 염전(鹽田)하는 강경환이 조선닷컴에 소개됐다. 두 손 없는 그는 염전 소출로 '자기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염전은 대표적인 '막장'으로 꼽힌다. 웬만한 사람은 며칠 만에 도망가기 일쑤다. 강경환 본인 표현을 빌리면 '손몽둥이'로 삽질에 써레질을 해서 팔 있는 사람의 열배 노력을 해야 겨우 본전을 맞추는 소금장수가 하는 일이다.
그 비정상적인 사연이 소개된 뒤 강경환의 인생은 더욱 확고해졌다. "변한 거 뭐 있겠어? 작년에 자원봉사자만 800명 왔고 덕분에 난 소금 많이 팔아 많이 나눠줬지 뭐. '사랑의 밀알'이라고, 봉사단체로 후원도 많이 들어왔고."
작년 7월 전남 해남에서 전화가 한 통 왔다. "사업 망한 사람인데 자살하기 전에 보고 싶다는 거라. 오라고 했지. 이틀 동안 소금일 하다 갔어. '당신 덕분에 인생 다시 살게 됐다'고 가더라고. 요즘 레미콘 일하며 잘 살고 있대요."
1972년 12월 24일 오전 9시 40분,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고향 서산 벌말 바닷가에서 강경환은 작은 깡통을 가지고 놀았다. 돌로 내려치는 순간 앞이 번쩍 하고 아이는 기절했다.
6·25 때 버려진 발목지뢰였다. 마을 사람들이 소년을 업고 병원으로 갔다. 지름 3m짜리 웅덩이를 넘어 500m 떨어진 집까지 피투성이가 된 소년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가수 꿈꾸던 소년은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어머니가 밥 먹이고 오줌 뉘어가며 뒷바라지했다. 어머니가 친정집에 갔다 늦게 돌아오던 날, 허기를 못 견딘 강경환은 '손몽둥이'로 수저질해 밥을 먹었다. 3년 만이었다. 이후 석 달 만에 스스로 밥 먹고 혼자 오줌 누게 됐다.
하지만 한번 망가진 인생 좌표는 회복되지 않았다. 농약 삼키려다 실패한 게 두 번, 이후 잠만 깨면 주막으로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하며 세월이 흘러갔다. 1980년 2월 18일 오후 10시까지였다.
"취중에 보니 책상에 유인물이 있었다. 아침에 읽어보니 팔 둘, 다리 하나 없는 사람이 멋지게 살고 있다는 스토리였다." 그에게 편지를 썼다. 나도 당신처럼 살 수 있냐고. 강경환이 말했다. "그분 강연회에 갔다. 아, 손이 있었다면 그 손으로 나쁜 짓을 하고 살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손 없는 대신에 사랑을 알게 되고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되고, 새롭게 살게 되었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술을 끊었다. 손목에 테이프로 낫을 묶어 낫질을 하며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다. 1994년 아버지 친구 권유로 염전에 뛰어들었다. 농사짓는 삽보다 훨씬 무겁고 큰 삽을 손몽둥이로 놀리는 방법을 익혔다.
수레에 싣는 소금량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적었다. 비장애인만큼 일하기 위해 밤 9시까지 물을 대고 새벽까지 소금을 펐다. 그가 말했다. "인내라는 게 노력만큼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리고 음모를 꾸몄다. "소금 한 포대가 1만원가량 하는데, 한 포대 팔면 1000원어치를 따로 창고에 모았다." 1995년 강경환은 서산 일대 독거노인들 집 앞에 소금을 한 포대씩 던져놓고 달아났다.
기이한 도둑질이 명절이면 계속되더니 2008년 모든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져버렸다. "힘이 부쳐서, 공무원들더러 도와달라고 트럭에 싣고 면사무소에 갔더니 사람들이 그만…."
강경환의 '부성염전'은 1만2000평. 한 해 소출이 6000만원 정도다. 순수입은 한 해에 18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여기에서 10%가 넘는 200만원을 '자기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 몫으로 떼놓는다니.
2001년까지 강경환은 본인이 기초생활수급자 목록에 오른 '불우이웃'이었다. 그해에 작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하고 그는 군청에 가서 수급자 신분을 포기했다.
장애인 수당도 포기했다. 월 36만원이 그 자리에서 날아갔다. "나는 살 수 있는 길이 닦아졌으니까, 어려운 사람 주라"고 했다고 한다. 강경환이 말했다.
"소금 한 포대 팔아서 1000원 떼면, 5000포대면 500만원이잖나. 하나를 주면 그게 두 개가 돼서 돌아오고, 그 두 개를 나누면 그게 네 개가 되어서 또 나눠진다. 연결에 연결, 그게 사는 원리다."
강경환은 "작년에는 기사가 잘 나가는 덕택에 여기저기에서 도와주셔서 한 1000만원어치는 내놓은 것 같다"고 했다. 해가 바뀌어 2010년이 되었다. 이상기후로 인해 염전 소출이 형편없이 줄었다.
강경환이 근심한다. "내가 먹고사는 것도 문제지만, 나 기다리는 분들은 어떡하나. 기사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니, 몽땅 책임지시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부성염전 연락처는 (041)663-889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