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세 들어 사는 고향' 전남 영광군 백수읍 구수리. 시인에게 있어 고향은 '칠산바다가 온통 술도가인 듯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술고래였'('법성포')던 곳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김규성(金奎成·1950년생) 시인의 아버지는 단연 왕 고래셨다. '여든여덟 어머니가 끓여주신 망둥어국을 먹'으며 '평소 간간하던 간이 영'('망둥어 국') 싱거움을 느꼈던 날들은 '형 죽고 나서 지상에서 가장 낮은 음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옹알이'('줄탁2') 하셨던 어머니의 병상을 거쳐, 적막한 슬픔과 만난다.

'최근 길 방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캄캄하고 춥고 너무 조용'('귀가')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피곤이 사무치고 굶주림이 사무치고 빛바랜 꿈이 사무치'던 시간의 텃밭에는 이제 어머니의 빈 병상과 가족의 부재가 꼿꼿이 자란다.

이렇게 시인의 시에서 우리는 그의 가족과 고향 이야기를 많이 만난다. 사회의 축소판이 가족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시인에게 가족은 제 힘에 부치지 않게 압축된 그 절대명제만이라도 온전하게 꾸려감으로써 자신이 속한 국가와 사회에 충실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공간이자 구차한 생의 구실이란다.

어머니는 당연히 그 중심에 자리한다. 고향은 그런 절박한 현실에 떼밀려 억압되고 상실해 온 안타까운 꿈의 은닉처이다. 그리고 이제는 서서히 자신도 모르게 읊조리게 되는 생사동근(生死同根)의 우주적 자아를 향한 귀거래사의 악보이기도 하다.

월간 《현대시학》(2010년 1월호)에 발표한 '슬픈 귀향' 역시 몇 달 전 병상에서 보내 드린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에 실직 낙향을 빗대어 요즈음 우울한 사회적 현실을 알레고리로 더한 작품이다. 객지에서 밀려낸 백수들이 할 수 없이 돌리는 피곤한 발걸음은 유년의 탯자리인 고향으로 향한다.

영광이라는 고향과 '백수'라는 말 앞에 붙은 '영광스럽게'라는 수식은 '슬픔'과 '귀향'의 이미지와 연결됨으로써 실직 탓에 어쩔 수 없이 낙향하게 된 오늘의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인의 심정과 만난다. 어머니의 간병인이었던 잠깐의 자리가 스스로에게 위안이자 아픈 가슴 쓸어내리는 기억이었음을 곱씹어 보는 자리에 시인의 눈물이 고여 있다.

이 모든 슬픔을 끌어안고 그는 현재 전남 담양군 대덕면 용대리에 아늑하고 조용한 집필 공간인 '글을 낳는 집'을 마련했다. 일상에 지친 작가들이 도심을 떠나 건강한 심신으로 좋은 작품을 낳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에서 두려우면서도 들뜬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부 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이곳에서 그는 창작 공간이 필요한 작가들을 기다린다.

초등학교 때 백일장 장원한 솜씨를 인정받아 졸업식 답사를 직접 써서 읽었던 적도 있지만, 발등의 불인 대가족을 웬만큼 이끌어 놓고 난, 한참 후에야 다시 시를 가까이 할 수 있었던 시인. 그는 사람이 먼저이고 그 사람에게서 비로소 시가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최소한 사람과 시가 서로 배반하지 않고 동반 상승하는 경지에서만이 진정한 작품이 빚어지는 게 아닐까. 깊고 넓고 따뜻한 동양적 정서로 농밀한 주체적 체험과 사회적 성실이 녹아 흐르는 상상력을 그리고자 그는 오늘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