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제우스, 매혹적인 아프로디테, 바다 괴물과 싸우는 헤라클레스….
그리스 신화 속 신과 영웅들이 생생한 조각과 그림으로 살아났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대영박물관전(展) '그리스의 신과 인간'을 둘러보면 방대한 그리스 신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올림포스산의 신과 인간들에 얽힌 사랑과 배신, 욕망, 질투, 선악(善惡) 등의 주제가 유물 한 점 한 점에 녹아 있어 보는 이를 황홀케 한다.
◆올림포스 신들이 여기 모였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의 조각상이다. 올림포스의 통치자인 제우스, 결혼의 여신 헤라,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 술의 신 디오니소스, 전령의 신 헤르메스 등 크고 작은 조각상들이 전시장 곳곳에 우뚝 서 있다.
팽팽한 근육질의 남성상들 사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대리석으로 빚어낸 두 여신상(女神像)이다. 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인 헤라의 두상(頭像)에선 올림포스의 안주인다운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쌍꺼풀 짙은 큰 눈에 오똑한 콧날, 살포시 다문 입술…. 실제 사람 얼굴보다 큰 크기(63×33×36㎝)가 관람객을 압도하며, 차갑고 무심한 시선 때문에 여신의 인상이 냉정하고 단호해 보인다. 아프로디테의 누드 전신상은 우아한 몸의 곡선과 자태만으로도 보는 이를 매혹시킨다. 그리스 미술에서 여성은 보통 옷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됐지만, 아프로디테만은 예외였다.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벗고 있는 이 여신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깜짝 놀란 듯한 모습이다. 허벅지 아래로 흘러내린 옷 주름이 관능미를 더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밖에 활에 시위를 매는 소년 에로스의 대리석상, 망토를 걸치고 바위에 앉아있는 헤르메스 청동상 등도 시선을 붙잡는다.
항아리·술잔·물병 등 각종 도기에 그려진 그림들에서 신화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테나 여신의 탄생'은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탄생하는 장면을 그렸고, '올림포스 산으로의 귀환'은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당나귀를 타고 올림포스 산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그렸다. 황금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 등 세 여신이 미모를 겨루는 '미인 대회'도 눈길을 끈다.
◆영웅들의 모험담도 가득
고대 그리스 세계에는 신과 인간 사이에 영웅이 존재했다. '힘의 상징' 헤라클레스의 대리석 두상은 굽이치는 머리카락과 수염, 위용 넘치는 얼굴선으로 영웅의 모습을 재현했다. 열두 과업을 수행해 불멸의 삶을 얻게 된 헤라클레스의 일화가 암포라(몸통이 불룩하고 양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에 새겨진 정교한 그림들을 통해 펼쳐진다.
전시된 금제 장신구 중 '헤라클레스 매듭이 있는 금제관'도 흥미롭다. '헤라클레스 매듭'은 그리스 시대에 널리 쓰이던 매듭으로, 힘센 헤라클레스가 아니면 끊을 수 없을 만큼 튼튼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메두사의 머리를 자른 페르세우스,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제압하는 테세우스의 모험담도 각각 테라코타 부조(浮彫)와 암포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은 "서양 문화의 원류이자 상상력의 보고인 그리스 신화를 동시대의 미술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라고 했다.
전시는 8월 29일까지 열린다. 관람료 일반·대학생 1만원, 중고생 9000원, 초등학생 8000원, 만 4세 이상 유아 6000원. (02)720-2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