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 했으면 오너 기업인도 아닌 관료 출신을 회장 후보로 추대했겠어요."
"비(非)오너 인사가 회장을 맡는다면 경총이 과연 제대로 굴러갈까요?"
경제 5단체 가운데 하나로 올 7월 15일 창립 40주년을 맞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후임 회장을 80일 넘게 못 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부터 이미 세차례 연임한 이수영 경총 회장이 올 2월 정기총회에서 사임을 발표한 후 '회장님 모시기'에 나섰지만, 관련 기업들이 모두 "나는 절대 못한다"며 손사래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이달 4일 경총은 산업자원부 장관과 무역협회 회장을 지낸 이희범 STX그룹 회장을 추대했다고 발표했으나, 3시간도 안돼 "기업활동에 전념해야 한다"며 이 회장마저 고사했다.
전국 5000여 회원사를 두고 있는 경총은 사용자측을 대표해 임금·단체 교섭 대책을 마련하고 노동 관련 활동을 하는 등 노사(勞使)문제에 관한 한 최고의 경제인 모임이다. 과거 정권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매년 적어도 1~2차례 대통령과 독대(獨對)할 만큼 회장직의 비중도 만만찮다.
그런데 왜 경총 회장 자리가 '기피대상'이 된 걸까? 재계 관계자들은 "경총 회장은 다른 경제 단체장들과 달리 태생적으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업투자나 일자리 창출, 수출 증대 등을 관장하는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무역협회 회장처럼 화려한 곳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개별 그룹에서는 황제가 부럽지 않은 회장들이지만 빨간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들을 상대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고, 때로는 노조와 싸우는 악역(惡役)도 해야 한다. 여기에다 자기가 속한 대기업이 자칫 민노총 등 노조 공격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큰 부담이다.
이런 연유로 1970년 전경련에서 노사 문제 전담 경제단체로 떨어져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경총 회장은 모두 4명뿐이다. 후임자가 없어 '비자발적 장기집권'이 관행화된 탓이다. 1992년과 2002년에 회장직 사퇴를 각각 선언했던 이동찬 회장(2대)과 김창성 회장(3대)은 후임자를 못 구해 4년, 2년을 더 한 다음 물러났다.
지금 경총 회장이 나서야 할 최근 노사 문제 이슈는 수도 없다. 올 7월이면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이 금지되고, 내년에는 복수노조 허용 같은 메가톤급 노사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노동계 춘투(春鬪)도 예고돼 있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대기업 오너나 전문경영인 모두 20년 넘게 경총 회장직을 극력 꺼리는 현실이 되풀이되고 있다.'힘만 드는 골치아픈 자리'라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노조의 극한 투쟁이나 부당한 요구가 나올 때, 기업인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해결한 적이 있었나요? 항상 정부의 공권력이나 각종 조치에 의지했지요."(재계 원로 A씨) 정부의 공권력이란 실은 국민의 세금과 암묵적 지지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기업인들은 국민의 뒤에 숨어서 눈치만 보고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기업인들의 비겁한 행태가 계속된다면 경총은 유명무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 각 기업과 기업인들이 피부로 깨닫게 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 나설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