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H&M 두배 정도지만, 그렇게 비싼 건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옷 소재가 좋아서 오래 입을 수 있어요. 유행 타는 스타일도 별로 없고요."
항공회사에서 일하는 정영원(36)씨는 프랑스 파리에 출장 갈 때마다 들르는 옷 가게가 있다. 스웨덴의 유명 패스트패션 회사 'H&M'이 2007년 영국에서 처음 문을 연 프리미엄 매장 '코스(COS)'. 파리에선 2009년 4월 마레지구에서 문을 열어 'H&M'의 인기를 위협하는 매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매장에서 볼 수 있는 옷은 대부분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 아이템. 캐시미어 카디건, 실크 셔츠, 모직 바지와 스커트 등을 소재에 공을 들여 만든 제품으로, 한 마디로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슬로 패션(Slow fashion)'을 표방한다.
일주일에 두 번가량 신제품을 쏟아내며 물량 공세를 펼쳤던 패스트패션의 선두주자 'H&M'이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패션에 민감한 고객일수록 고가의 하이패션 제품보단 저렴하면서도 'H&M'이나 '자라'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보단 질이 좋은 제품을 원한다. 이젠 그 틈새를 어떻게 겨냥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코스'의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 레베카 베이(Bay)의 출사표다.
패스트패션 업체까지도 이젠 저렴한 가격이나 유행보단 품질을 따지는 소비자의 입맛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 스페인의 패스트패션 '자라(Zara)' 역시 기존 브랜드보다 더 심플한 옷을 고급스러운 소재로 내놓는 '마시모 두티(Massimo Dutti)'를 유럽과 중남미, 중동 등에 선보였다. 현재 매장이 20여개. 영국, 벨기에, 프랑스 등에선 '자라'보다 오히려 인기다.
이들의 특징은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해 상품을 만드는 소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패스트패션 회사가 대개 이들의 낮은 가격과 품질을 상쇄시키기 위해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한정판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과 정 반대로 이들은 꾸준히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갖춘 기본적인 상품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국 유럽에선 패스트패션 회사들조차 더는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는 유행보단 '품질' 경쟁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 그야말로 패스트패션 업체들이 이제 막 명동과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이기 시작한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