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목 울산 암각화박물관장

십수년 전 겨울 두껍게 얼어붙은 대곡천을 건너 반구대암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반구대암각화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그날의 강렬했던 감동은 오랫동안 남아있다. 거대한 암벽에 빼곡히 새겨진 그림들은 수천년의 시간을 넘어 어떤 신화적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뛰어난 선사 해양어로문화 증거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서 농사가 아닌 수렵과 어로 자원을 통해 일찍이 정착사회에 도달한 것은 뛰어난 어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대표적인 어로 수단으로는 하천에 설치하는 어살, 통발, 다양한 종류의 어망, 작살, 낚시 바늘 등을 꼽을 수 있다. 고래 사냥과 같은 해양 포유류 사냥에는 배, 정교한 작살과 부구, 사냥에 동원되는 조직화된 집단 등 단순한 어로보다 훨씬 복잡한 기술과 사회조직을 필요로 한다.

선사학자들은 농경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이른 시기에 정착생활을 이룩한 곳을 해양문화권 또는 연어문화권으로 분류한다. 계절적으로 회유하는 연어를 마치 경작물처럼 수확하고 비축해서 정착문화를 꽃피웠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베링해, 캘리포니아로 이어지는 북태평양 연안지역과 북유럽 스칸디아반도의 연안이 여기에 포함된다. 반구대암각화는 이러한 독특한 선사시대 해양어로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업수도의 선진 기술 뿌리"

울산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산업수도'로 불린다. 울산시민의 염원을 담아 짓고 있는 울산박물관 역시 이러한 산업사를 메인 주제로 잡아 건립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 상징물 가운데 하나가 반구대암각화다. 반구대암각화 유적은 인류 최초의 포경(捕鯨) 유적으로서 이미 반만년 전 신석기시대에 배를 만들고 정교한 도구와 기술을 이용해서 거대한 고래를 사냥했던 당시 기술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울산을 찾는 외국 바이어들은 반구대암각화를 보고서 우리 산업의 뿌리가 이미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곤 한다.

건립 중인 울산박물관 외벽 정면 우측에 모래를 뿌려 새긴 반구대암각화 문양. 복잡 한 문양을 단순화해 중요 문양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썼고 채색도 미리해 자연스레 색이 바래도록 했다.

그러한 반구대암각화가 울산박물관에 고스란히 새겨지고 있다. 울산박물관추진단은 울산과 울산박물관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반구대암각화를 꼽았고, 울산박물관을 설계한 이는 건립 중인 박물관 건물 외벽의 정면 우측을 반구대암각화을 위한 자리로 배려했다.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무는 위치다. 박물관추진단에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하면 반구대암각화 현장의 감동을 고스란히 담아서 관람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였다.

◆"박물관 외벽에 반구대 담자"

박물관 외벽에 암각화를 표현하는데는 난관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난제는 '반구대암각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다. 의견들이 분분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조각품으로 설치하자는 의견, 표현할 소재가 마땅치 않으니 벽돌을 이용해보자는 제안 등 갖가지 얘기들이 오갔지만,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예 설치하지 않는 방법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를 거듭한 결과 '암각화 자체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박물관 외벽에 직접 새겨넣는 것이 최선'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다음 과제는 '기복이 심한 자연 절벽의 문양을 평편한 벽면에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다. 실제 크기로 새겨넣은 것이 최선이지만 상대적으로 왜소해보일 수 있는 데다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또한 모든 문양을 다 넣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박물관 건립현장을 오가며 수십 차례 이상 논의가 이어졌다. 최종 결론은 복잡한 중복 그림과 판독이 어려운 문양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대신 중요한 문양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반구대암각화 문양의 크기는 건물의 외관 규모에 맞게 실물보다 3배로 키우고, 시각적 효과를 위해 그림을 채색하는 방안이 채택됐다. '나름대로 묘안'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가슴 졸인 기다림…"기대 이상"

암각화 문양을 새기는 데는 모래 분사(Sand Blaster)공법이 채택됐다. 컴퓨터에 입력된 도면에 따라 모래를 뿌려 조각면을 새기는 방법이다. 그로부터 몇 주간 추진단은 반구대암각화가 어떻게 새겨질지 '기대반 우려반'으로 가슴 졸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컴퓨터에 입력된 도면에는 각 문양의 상대적 깊이와 높낮이도 들어 있고 이것이 잘 반영돼야만 생동감이 살아나는데, 그 결과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마지막 과제는 채색할 색깔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외장석의 색감을 자연스럽게 살리면서도 문양의 형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색깔을 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건축사가 제안한 색상도 어두운 느낌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묘안이 나왔다. "개관은 1년 뒤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라 개관 이후다. 이 색을 미리 칠해놓고 1년이 지나면 그때부터 가장 자연스러운 색감이 드러날 것이다."

추진단과 건축 관계자들의 자체 감정 결과 그 제안은 탄성과 박수를 받았다. 반구대암각화를 울산박물관 건축물에 담아내는 첫 번째 스토리는 이렇게 완성됐다. 지금 박물관 건립 현장에 가면 그렇게 탄생한 반구대암각화를 미리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