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70억원을 국내 카지노에서 날리고 중소기업 사장에서 중국음식점 종업원으로 전락한 50대 남성이 이번엔 해외 원정도박을 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3일 경기지방경찰청 외사범죄수사대에 따르면 나모(56)씨는 경기도 화성에서 종업원 20여명을 둔 화학약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그는 강원랜드 카지노가 개장한 지 3일 만인 2000년 10월 말 호기심에 이곳을 찾았다가 '도박중독자'가 됐다. 카드 2장의 숫자를 합친 높낮이에 따라 돈이 오가는 '바카라' 도박에 빠져든 결과였다.

하루 만에 바카라 게임으로 3000만원을 잃으면서 ’도박인생’이 시작됐다. 본전을 생각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다음날 5000만원을 밑천으로 카지노를 다시 찾았지만 5∼6시간 만에 이 돈마저 모두 날려버렸다.

그는 카지노에 드나들기 전에는 상갓집에서도 고스톱 한번 하지 않은 착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박에 빠지고 처음 몇 달간은 도박 외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카지노가 문을 여는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 폐장할 때까지 20시간 동안 꼬박 도박만 했다.

그가 도박에 빠지기 전부터 심장병을 앓아 입원 치료를 받아온 아내는 그가 카지노에 발을 들여놓은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내를 잃고 나서도 그는 매달 강원랜드를 찾았다. 거래처에서 대금으로 준 어음도 카지노 근처에서 현금으로 바꿔 도박하다 모두 날렸다. 돈이 부족해진 그는 주변 사람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3년가량을 카지노를 드나들며 도박을 하는 동안 결국 회사까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카지노에 드나든 지 5∼6년 만에 그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집을 포함한 전 재산 70억원을 날렸다. 당시 회사원이던 큰아들은 친구 집에서, 지하철역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작은아들은 지하철역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그는 도박에 빠져 약 4년간 호텔에서 살다시피 했다. 호텔에서 베팅 금액 등에 따라 적립해주는 마일리지가 1∼2년은 먹고 자도 될 만큼 쌓였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자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도박에 빠진 지 4년쯤 지났을 때 강원랜드 근처에 얻은 집에서 옷걸이에 목을 맸다. 옷걸이 기둥이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약국을 돌며 수면제 120여알을 사 모았다가 남은 가족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기도 했다. 2005년 6월쯤엔 호텔 방에서 농약을 마셨지만, 호텔 직원에게 발견됐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가량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나씨는 지난해 2월부터 지방의 중국음식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해왔다. 그러나 도박의 유혹을 이길 수는 없었다. 최근 필리핀으로 여행을 간 그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현지 카지노에 들렀지만, 결과는 이전과 똑같았다. 경찰은 3일 나씨 등 필리핀 원정도박 사범 31명을 상습도박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