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으로 한 달 넘게 온 사회가 슬픔에 빠져 있는 동안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51)은 전교조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전교조가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낸 '교원노조 가입교사명단 수집 및 제출금지 가처분'을 기각한 3월 26일 밤 9시 22분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천안함이 침몰했다.

같은 날 전교조와 소속교사 16명은 조 의원이 추진 중인 명단공개 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4월 15일 서울남부지법이 공개금지결정을 내려 전교조의 손을 들어주자 조 의원은 같은 날 항고했다. 그리고 4월 19일 조 의원은 홈페이지에 전교조 6만1273명을 비롯한 5개 교원단체 소속 교원 22만2479명의 실명(實名)과 소속학교를 공개했다. 이에 전교조와 소속교사 16명은 서울남부지법에 간접강제신청을 냈다. 4월 23일 조 의원은 "교원단체 명단공개는 개인이 아닌 국회의원으로서 행한 직무행위이고 남부지법의 공개금지판결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직무를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남부지법은 4월 27일 간접강제 결정을 통해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가입현황 실명 자료를 인터넷이나 언론 등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며 "이를 어길 경우 하루에 3000만원씩 전교조측에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천안함 장례식이 있던 4월 29일 오후 김효재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 10여명은 전교조 명단공개에 동참하겠다며 자신들의 홈페이지에도 명단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뉴스의 중심에 선 조 의원은 일요일(2일)에도 오전에는 교회에 갔다가 의원회관에 나와 관련자료를 점검하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종종 전교조나 법원 판결에 목소리를 높이던 조전혁 의원은 "내가 맥없이 손들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인데, 맷집 하나는 튼튼하니 그런 걱정 하지 말라"며 크게 웃었다.

―동료의원들의 명단공개 동참으로 일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부담스럽지 않은가?

"눈물 나게 고마울 뿐이다. 이래서 정당에서는 동료들을 부를 때 '동지(同志)'라고 부르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사실 교수 출신이라 그동안 입에서 동지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었는데."

―이번 법원결정에 이념적 요소가 있었다고 보고 대응하는 것인가?

"공개금지 결정에는 일부 그런 요소가 있었지 않나 생각하는데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하루 3000만원씩 내라는 간접강제의 내용이다. 몇년 전 미국에서 한국인 세탁소에 바지를 맡겼다가 세탁소에서 그것을 분실했다는 이유로 5400만달러(약 600억원)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가 판사직에서 쫓겨난 로이 피어슨이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나도 1년만 홈페이지에서 내리지 않으면 100억원이다. 이런 식이라면 음주운전해도 1억원 벌금 때리면 된다. 누가 음주운전하겠나."

―전교조와 싸우다가 전선(戰線)이 법원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조 의원이 명단공개를 고수하는 데 대해 돈키호테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내가 왜 돈키호테인가? 그 판사가 돈키호테지. 공개금지 결정의 경우 다소 불만은 있지만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하루 3000만원이라는 결정은 나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의 일부 판사들이 국민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판사 말을 안 들어. 너 혼 좀 나봐라' 이것 아닌가."

―명단공개를 헌재 판결까지 늦출 수도 있었을 텐데. 전교조도 스승의 날을 맞아 자발적으로 공개하겠다지 않는가?

"중앙지법은 명단공개가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했고 남부지법은 침해될 수 있다고 했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는 와중에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명단을 받았다. 국민들이 난리가 났다. 법원 판단은 엇갈리고 국민들은 공개하라고 난리고. 국회의원이 어떤 선택을 해야겠는가? 그리고 전교조의 자발적 공개 운운은 이 일이 있은 후다. 오히려 그전에 내가 자진공개를 권유했으나 들은 척도 않다가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니 공개 운운하는 것이다."

―그래도 우파라면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악법도 법이다'를 행동준칙으로 삼아 따라야 한다고 보는데. 게다가 여당의원 아닌가.

"이번 사안은 위법(違法)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위헌(違憲)여부를 가리는 문제다. 그래서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냈다. 내가 개인 자격으로 교과부에서 자료를 받은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확보한 자료를 공표하고 여론을 수렴해서 입법활동을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다. 시민에게 군법 적용이 안 되듯이 국회의원 직무행위에 민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개인 자격이라면 법을 어긴 것이라는 지적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서는 결코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헌재가 가려줄 것이다."

―전교조가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조 의원은 좌파진영에서 '전교조의 주적(主敵)'으로 지목될 만큼 집요하게 전교조를 공격하고 있다. 2006년에는 '전교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책도 내지 않았는가. 좌우공존의 필요성 내지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에서 다소 극단적인 것은 아닌가.

"극단적인 게 아니라 원칙적인 거다."

―전교조는 없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라도 갖고 있단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전교조의 존재는 인정한다. 공과(功過)가 있다. 요즘은 특히 과(過)가 더 심각하긴 하지만. 사실 그 책의 경우 출판사에서 판매목적을 위해 좀 자극적인 제목을 붙인 것인데 내용은 사례중심으로 전교조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일 뿐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럼 전교조에 대한 조 의원의 원칙은 뭔가?

"나는 보수·진보가 아니라 우파·좌파를 기본으로 이념을 나눈다. 그리고 우파에도 진보우파와 보수 수구우파가 있고 좌파에도 진보좌파와 보수 수구좌파가 있다. 나는 교육분야의 뉴라이트운동을 통해 진보우파를 지향한다. 반면 전교조는 80년대식의 수구좌파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싸울 수밖에 없다. 전교조, 특히 지도부는 수구좌파에서 벗어나 진보좌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우리의 헌법적 가치, 개방성, 북한인권에 대한 비판의식 등을 수용하지 않는 한 전교조는 수구좌파다.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방치할 수 없어서 나는 싸운다."

―경제학자가 교육문제, 그중에서도 전교조 비판에 앞장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미국에서 유학할 때 나는 신성장이론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접할 수 있었다. 경제성장의 동력을 인적 자본 축적에서 찾는 이론이다. 아무런 자원도 없던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이론이었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 학교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너무나도 반(反)시장적이고 반(反)기업적인 정서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전교조 교사들의 영향이었다. 이들을 바로잡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 만연된 반(反)시장 반(反)자유주의의 정서를 걷어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했나?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학 때도 가끔 시위에 참가해 돌도 던져봤지만 운동권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좀 뭐한 이야기지만 전형적으로 놀기 좋아하는 날라리 대학생이었다. 교수생활도 비슷했다. 아이들 가르치고 연구프로젝트 수행하고 골프도 핸디4까지 쳐봤으니. 흔해 빠진 '띵까띵까' 교수였을 뿐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는데 노무현 정부를 보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2004년 8월 조선일보에 이런 걱정을 담은 글을 보냈더니 실렸다. '저주의 굿판을 멈추어라'는 그 글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글에도 이미 "이념교육에 몰두하는 전교조 굿판", "교육사회주의에 점령된 중등교육은 선무당 사관생도를 양산하고 있다"며 전교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스스로 '날라리' 학생, '띵까띵까' 교수라 했는데 운동가를 거쳐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운명이다. 실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박근혜 캠프와 이명박 캠프 양쪽에서 참여를 권유했다. 박 캠프의 유승민 최경환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같이 공부했고 이 캠프의 곽승준 박형준은 친구들이다. 그러나 사회운동을 이끄는 사람이 경선캠프에 참여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해 거리를 두었다. 대신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가 되고서 한나라당 대선공약 만드는 데 참여했다. 대선 후 인수위원회에도 들어가 우리가 만든 교육관련 공약들을 정책으로 만드는 데도 깊이 관여했다. 그리고 2008년 총선 공천마감 이틀 전에 인천 남동을을 찍어서 나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새 대통령의 교육정책을 만드는 데 관여했으니 그것을 입법화하는 데도 앞장서야 하지 않느냐는 말에 넘어갔다."

'하루 3000만원 지급' 이행결정이 내려진 날 조의원 부인이 보낸 문자 메시지.

―하루 3000만원 결정이 있던 날 초등학교 동창인 부인이 보냈다는 메시지, '국민의 알 권리보다 마누라의 살 권리가 더 무서워 명단 내린다 혀라. 나도 좀 살자'가 화제였다. 그 후 부인의 다른 반응이 궁금하다.

"문자메시지가 전부다. 전업주부라 속으로야 나보다 더 걱정되겠지만 명단과 관련된 이야기는 더 이상 않더라."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공개한 재산은 6억7000만원 정도 되던데.

"그건 후원금까지 포함한 것이고 실제 재산은 전세금 포함해 2억 정도 될 텐데 빚을 빼고 나면 1억원 정도다. 실제 집행될 경우 사나흘이면 난 파산이다."

―헌재의 권한쟁의심판에서 패소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 국회의원 그만둬야지. 국민의 알 권리 하나 제대로 대변할 수 없는 국회의원 해서 뭐하겠는가?"

―전교조와의 싸움은?

"그들의 수구좌파적 행태가 계속되는 한 이번 싸움 정리되는 대로 계속해 나갈 것이다."

조전혁 의원은…

한나라당 초선(初選)인 조전혁(趙全赫) 의원은 1960년 광주광역시생(生)으로 고려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인천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했고 2004년부터 교육문제 논객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뉴라이트 운동에 뛰어들어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를 지내며 전교조와 각을 세웠다. 2008년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도 전교조를 비롯한 좌파진영의 교육이념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수능성적 공개를 주도했고 이번에는 전교조 명단 공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원으로부터 '하루 3000만원 배상'이라는 결정을 받아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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