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 월드컵 때 황선홍은 0―3으로 끌려가던 독일전(2대3 패) 후반에 자신의 월드컵 첫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기뻐하지 못했다. 볼리비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 때 수많은 기회를 날렸던 황선홍은 오히려 박치기를 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본선에서 수많은 기회를 날린 것에 대한 자책이었다.
그러나 2002년은 달랐다. 그는 한·일월드컵 첫 경기 폴란드전(2대0 승리)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축하하려는 동료들을 밀쳐내며 마구 달렸다. 그는 "그때 너무 힘껏 달리는 바람에 이후 5분간 운동장에서 제대로 뛰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황선홍(42·현 부산 아이파크 감독)에게 두 월드컵은 그렇게 달랐다.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골
최근 부산 아이파크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황선홍 감독은 폴란드전을 떠올려달라고 하자 웃음부터 지었다.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터진 황 감독의 결승골은 이을용의 발끝에서 출발했다. "수비를 따돌리고 나니 (이)을용이의 크로스가 날아왔어요. 높이가 어중간해 바로 때릴지, 한 번 바운드를 시킬지 짧은 순간 고민을 했죠." 황 감독은 "그라운드가 젖어 있는 걸 생각해 공이 그라운드에 닿기 전 왼발을 갖다댔다"고 했다. 공은 깨끗하게 골망을 갈랐다.
황선홍 감독은 이 골을 '죽을 때까지 계속 생각날 골'이라고 했다. 15년간 대표팀 스트라이커로 활약했지만, 월드컵 무대에선 유독 운이 없던 그였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경험 부족으로 얼어붙었고, 4년 뒤 미국에선 긴장감으로 경기를 망쳤다. 가장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부한 19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대회 직전 무릎을 다쳐 출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황 감독은 "폴란드전 골로 비로소 '비운의 스트라이커'란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폴란드전에서 허벅지를 심하게 다쳐 정상적으로 뛸 수 없었지만 무리하게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 당시엔 월드컵이 끝나고 축구를 그만둬도 좋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동국의 골을 보고 싶다"
황선홍 감독은 월드컵을 앞둔 후배 골잡이들에게 스스로의 골 영상을 질리도록 보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잘한 영상을 계속 보면 머릿속에 다양한 골 장면들이 저절로 입력돼요.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몸이 저절로 반응합니다. 물론 자신감도 갖게 되고요."
황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보고 싶은 장면은 이동국의 골"이라고 했다. 19세의 나이로 1998 월드컵에 출전했던 이동국은 2002년엔 엔트리 탈락, 2006년엔 부상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동국이가 걸어온 길이 저의 2002년 월드컵 전 상황과 비슷합니다. 충분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기 기량을 믿고 마음을 비운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