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구 예비역 해군제독

잠수함 함장과 잠수함 부대 전대장·전단장으로 근무한 나는 천안함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거의 본능적으로 "어뢰에 맞았다"는 느낌이 왔다. 현재 1200t급 군함을 두 동강 낼 수 있는 재래식 무기는 잠수함 어뢰 딱 한 가지뿐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대문 열려 있는 백령도 해역

백령도 해역은 잠수함에 가장 중요한 접근로가 활짝 열려져 있다. 수로를 막거나 대잠망을 쳐놓은 것도 아니고 말뚝을 박아놓은 곳도 아닌 넓디넓은 해역이다. 단지 남한 해군 함정 몇 척만이 떠 있어 이런 해역은 침투 작전을 시도하는 잠수함엔 매우 쉬운 접근로다. 2차대전 때 독일 잠수함 U-47은 수로를 막아 놓았는데도 만조 때 옆에 생긴 도랑으로 침투해 항구 안의 영국 해군 전함을 침몰시켰다. 천안함이 당한 해역은 이와 비교해 보면 대문을 열어 놓고 있는 곳이나 마찬가지다.

바닷속의 잠수함을 찾아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재까지는 음파에 의한 탐지다. 천안함 같은 초계함에는 음탐기가 있지만 음탐기로 바닷속의 잠수함을 속속들이 잡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음파는 바닷물의 온도·염도·비중·유속 등의 특성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잠수함을 찾아내지 못하기도 한다. 계절·시간·위치에 따라 불확실해지는 경우도 많아 음탐기를 작동시킨다고 수중의 잠수함을 모두 찾아내기란 어렵다.

백령도는 고기 잡는 그물 때문에 잠수정 침투가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반드시 그러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러지 아니하고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면 그것을 취하는 것이 잠수함의 침투술이다. 함정들이 접근하지 않는 그물 구역이 침투 잠수함엔 오히려 접근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물과 그물 사이로 침투하다가 그물이 스크루에 걸리게 되면 잠수함에선 수영자(者)를 밖으로 내보내 끊고 침투한다. 그물지역이 오히려 '잠수함의 천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다에 쳐놓은 그물이 잠수함의 침투를 막아줄 것이란 순진하고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적당한 달빛의 정조시각

3월 26일. 음력으로 2월 11일. 유속이 3노트나 되는 사리 때. 백령도 해역의 저조(해수면이 가장 낮아진 상태) 시각(21시 47분)에서 30분가량 전인 21시 18~19분경. 유속이 어뢰 항주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의 정조(물흐름이 멈춘 상태) 시각.

잠수함은 어뢰 발사 전에 이미 천안함이 남한 해군 군함임을 확인했을 것이다. 천안함의 함 번호까지 확인했을 수도 있다. 칠흑 같은 밤이라면 어뢰를 발사하기가 쉽지 않다. 잠수함은 목표물을 대충 확인하고 어뢰를 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저격수가 목표물을 확실히 확인하지 않고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것과 같다. 천안함이 아니라 미 해군 군함이었더라도 어뢰를 발사했을까. 나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목표물을 확인하려면 달빛이 있어야 한다. 그날의 달은 보름달이 되기 나흘 전이라 반달보다 조금 더 컸다. 아주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적당한 달빛이다. 시정 거리가 6마일(10㎞) 이상이었고 구름이 없었다. 목표물을 확인하기에 오히려 이상적인 기상 조건이었다. 해상엔 파고가 2~2.5m로 약간 높았다. 이런 경우가 파도가 잔잔한 때보다 오히려 잠수함이 공격하기에 훨씬 낫다. 잠망경이 함정 레이더에 잘 나타나지도 않고 함정 견시(감시병)들에게 발각될 위험도 적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조건에서 함정들은 변침(방향전환)·변속을 자주 하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저속 항해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천안함도 북서 침로(방향)를 잡고 저속인 6노트로 항해 중이었다.

잠수함은 남한 군함임을 확인하고 약 3000야드(2.7㎞) 이내의 거리에서 어뢰를 발사했을 것이다. 어뢰 항주 심도는 천안함 흘수(배가 물에 잠긴 부분의 깊이)보다 2m 정도 깊은 심도. 천안함의 흘수 수치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뢰 속도를 30노트로 보면 3000야드 항주에 걸리는 시간은 3분. 어뢰항주 소음이 천안함의 음탐기에 잡히더라도 대책을 취하기에 충분치 않은 시간을 고려했을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5000t급도 두 동강 내는 중(重)어뢰

일부에선

[북한]

이 어뢰로 함정을 두 동강 낼 능력이 있느냐고 묻는다. 철판에 의한 자기(磁氣)감응을 이용해 배 밑에서 폭발하도록 어뢰의 항주심도를 맞추어 발사하는 것은 잠수함 중어뢰의 통상적인 운용방법으로서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잠수함의 현대식 중어뢰는 직경 21인치(533㎜)에 7m가 넘는 길이에 무게도 2t가까이 나간다. 한 기당 가격도 20억~25억원이나 된다. 현존 재래식 무기 중 가장 크고, 폭발력도 가장 크다. 기두 부분에 TNT보다 1.5~2배의 폭발력을 낼 수 있는 200~250㎏의 특수 고성능 폭약이 들어 있어 수중폭발하게 되면 5000t급 함정이라도 단번에 두 동강 낼 수 있다.

폭발력은 선체에 직접 부딪혀 폭발시킬 경우보다 함정 아래 1~2m 깊이에서 폭발시켰을 때 더 커진다. 어뢰에 내장된 특수 알루미늄판이 1500도 정도의 폭발 고온에 의해 해수의 팽창을 일으킨다. 분출 압력이 위로 솟구쳐 함정의 용골(척추)을 부러뜨리면 순간적으로 만들어졌던 폭발의 진공 공간 속으로 다시 흡입 현상이 나타나면서 함체를 다시 밑으로 당겨 함정이 두 동강 난다.

천안함 침몰은 잠수함 중어뢰로 피격된 전형적인 형태다. 사건 당시 백령도 지질연구 분소에 잡힌 폭발음이 TNT 180㎏ 정도의 폭발음이었다는 분석이 정확하다면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는 현대식 중어뢰보다는 성능이 약간 떨어지는 어뢰일 가능성이 많다. 제대로 된 현대식 중어뢰라면 TNT 400㎏ 이상의 폭발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통한 순간 1-2-0(원-투-제로)

어뢰를 발사하고 3분 후인 21시 22분(백령도 지질연구 분소의 폭발음 수신시각 21시 21분 58초)에 천안함의 중앙 갑판이 바다 위로 솟구치고 폭음이 들렸다.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

그때까지 잠수함은 잠망경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폭음과 동시에 더 이상 지체 않고 북서쪽으로 침로를 잡는다. 그때부터는 복귀작전. 물이 들어오기 시작해 가만히 있어도 북서쪽으로 3노트의 조류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 모든 조건이 우연히 일치된 것일까. 잠수함은 우연을 보고 작전하지 않는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공격한다. 우리는 그런 치밀한 계산 공격에 당한 것이다.

잠수함 중어뢰가 함정을 두 동강 내는 것을 잠수함 승조원들은 '1-2-0(원-투-제로)'라고 부른다. 목표물인 함정 한 척이 어뢰를 맞은 다음 두 척으로 두 동강 났다가 이내 바닷속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현상(one ship-two ship-no ship)을 뜻하는 잠수함 승조원들의 용어다. 어뢰를 발사한 잠수함 함장이 보고 싶은 그림이고 잠수함 승조원들이 기다리는 극치의 장면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잠수함 함장근무를 끝낼 때까지 그런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라도 전투가 벌어진다면 내가 가진 어뢰 수 곱하기 둘만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바닷속을 휘저어 다녔다. 그런데 그 순간을 이렇게 어이없이 빼앗기고 철저히 당했으니 원통하기 한이 없다. 나뿐이겠는가. 우리 잠수함 부대 승조원들 모두 분한 속을 달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디서 온 잠수함일까?

증거가 없으니 예단하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다. 길을 막고 물어보자.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군함에 어뢰를 발사한 잠수함이 어디서 온 잠수함일 것 같으냐고. 서해 바닷물을 전부 퍼내서라도 반드시 있을 그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이 원통한 원-투-제로를 되갚아 줄 증서로 삼아야 한다. 비명에 간 원혼들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