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문화부 차장대우

소설가 김윤영씨가 올 초 발표한 장편 '내 집 마련의 여왕'은 우리 문학에선 드물게 등장하는 부동산 재테크 소설이다. 주인공 수빈은 남의 빚보증을 잘못 서서 알거지가 됐다가 재기하기 위해 부동산 공부를 시작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실제로 부동산과 법원 경매 현장을 취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가 돈벌이 정보나 알려주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부동산 열풍에 휩쓸려 온 나라가 불행해지는 이상한 나라 한국의 풍경을 세밀화로 그린 작가는 이 땅의 아파트 광풍(狂風)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올라탄 욕망의 바벨탑'이라고 정의했다.

한국 소설에서 아파트는 시대에 따라 그 공간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소설 속 아파트는 도시화로 인한 내면의 황폐화와 개인이 소외당하는 고립을 다루는 문학적 장치였다. 소설가 최인호씨가 1970년대 발표한 단편 '타인의 방'의 무대도 아파트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문을 따고 들어간다. 아내가 남긴 메모를 발견한 남자는 자신이 버려졌고, 심지어 집에서 물건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씨는 이 소설을 통해 고독에 빠졌거나 수단으로 전락한 도시인의 초상을 그렸다.

그러나 2000년대 소설들에서 아파트는 존재론적 고민을 담는 폐쇄된 공간이 아니다. 작가들은 대신 소유욕과 빈부격차,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충돌하는 대립의 공간으로 아파트를 다시 그리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는 "과거의 소설들은 아파트가 모두 똑같다는 점에서 도시의 획일성과 몰개성을 지적했는데, 요즘에는 아파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 계층 간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택담보 대출 잔액이 300조원에 육박하고,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미국(126%)이나 일본(110%)보다 많은 150%대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단순히 경제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을 넘어 삶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에 내재한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려서 아파트를 사고 집값 오르기만을 기다리며 대출금이나 갚고 사는 비극적 코미디를 벌이는 기성세대야 스스로 쳐 놓은 그물에 갇힌 것이니 할 말 없다고 치자. 애초에 집을 구할 가능성을 차단당한 우리의 동생들과 아이들이 갖게 될 절망과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근 30대 작가들이 잇달아 발표하는 아파트와 방에 대한 소설들에는 욕망의 무한질주를 벌이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그려지고 있다. 지난주 출간된 김미월씨의 장편 '여덟번째 방'은 월 10만원에 잠만 자는 방을 전전하는 20대 청춘의 고난을 스케치한다. 20대 내내 하숙집과 자취방을 옮겨 다니면서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고 자신을 위로하는 주인공의 말이 분노의 욕설보다 뼈아프게 읽는 이의 눈을 찌른다. 지난 연말 출간된 이홍씨의 장편 '성탄 피크닉'은 로또에 당첨돼 서울의 비싼 아파트에서 살게 된 소녀가 더 많은 풍요를 얻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다가 결국 살인 사건에까지 휘말리는 파국을 그린다. 세상이 소설들의 경고대로 파국으로 가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 괴상한 '아파트 공화국'의 현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