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79) 단국대 명예교수의 서울 종암동 2층 단독주택은 마치 이사를 하다가 만 집처럼 휑했다. 주방 식탁과 거실 소파, 침대 같은 기본적인 가구만 눈에 띌 뿐이다. 거실·안방·지하실·서재의 벽엔 누런 얼룩이 번져 있었다. 이 교수가 50년간 애지중지 모아 집안 곳곳 가득 쌓아두었던 아동문학잡지와 동화책, 동시집 등 3만여권을 지난 1월 경희대 도서관에 기증한 뒤 집이 이렇게 변했다.

경희대는 기증받은 책들로 24일 국내 첫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를 연다. '산수(傘壽·80세)'를 앞둔 노(老)교수는 아동문학연구센터 소장으로 첫 출근할 날을 기다리며 아이처럼 들떠 있다. 그는 "대학에 아동문학학과와 아동문학연구소를 만들고 싶었다"며 "평생 소원이던 두 꿈의 절반은 이뤄졌다"고 웃었다.

이재철 교수는“어린이를 거치지 않은 어른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아동문학으로 노벨상 받은 사람은 없다”며“연구소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아동문학학과를 만들어 노벨상 후보를 배출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 교수는 1963년 모교 경북대에서 시와 소설을 가르치던 중 경북대 병설로 생긴 대구교육대학 교수가 됐고, 이때 처음 아동문학을 접했다. 당시 16개 교대 교수들이 모여 공통교과서를 집필하려 했지만 아동문학 분야는 쓸 사람이 없었다. 그는 "다른 교수들이 '자료를 끌어모아 책을 써보라'고 권하기에 얼떨결에 맡았었다"며 "허허벌판에서 자료를 모으다 보니 어느새 '아동책 수집 마니아(mania)'가 돼 있더라"고 했다.

경북 청도의 대지주 집안 3대 독자인 그는 "책 사려고 유산(遺産)을 물쓰듯 썼다"고 했다. '책에 미친 사람'으로 소문이 난 이 교수가 고서점에 들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책방 주인들은 값을 10배까지 올려놓기도 했다.

60년대에도 희귀본은 금값이나 다름없었다. 이 교수는 "육당 최남선이 창간한 잡지 '소년' 한 권을 대구교대 교수 한 달 봉급으로 사가자 집사람이 기절초풍했다"고 했다.

1906년 창간된 어린이 잡지 '소년한반도' 1·2·3호를 비롯해 '소년(1908)''붉은 져고리(1913)''아이들보이(1913)' 등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북한의 아동도서에 이르기까지 잡지와 동요·동시집, 동화집 등 3만여권이 그렇게 쌓여갔다. 방정환의 '소파전집'이나 동화작가 이구조의 '까치집(1940)' 등 희귀자료는 소장한 사람들이 스스로 건네줬다고 한다. 이 교수는 "내가 아동문학 자료를 수집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자의반타의반 들어온 책도 적잖다"고 했다. 그가 이렇게 모아 경희대에 건넨 서적들은 시가로 3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67년 국내 최초로 '아동문학개론'을 저술한 뒤 '한국현대아동문학사(1978)''세계아동문학사전(1989)'도 펴냈다. 이 교수는 "방정환 선생이 돌아가신 해(1931년)에 내가 태어난 것도 어쩌면 운명인지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