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잡지 펜팔란에 등장했더니 초등학생부터 군인까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편지가 왔다. 하나도 안 빼놓고 답장을 했는데 100명이 넘었다. 그러나 차츰 교신(交信)이 줄었고, 자신을 '까미'로 불러달라고 했던 언니만 남게 되었다.
사진은 본 적이 없지만, 학교에서는 말괄량이로 통하고 펑크 머리에, 피어스를 아홉 개나 뚫었다는 언니는 미국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한국에 왔다고 했다. "이렇게 펜팔 하는 거 친구들이 알면 너무 안 어울린다고 따돌릴지도 몰라." 우스갯소리도 하곤 했다. "감기가 다 '나섰어'와 '낳았어', 어떤 게 맞아?"라고 묻는 언니는 귀엽게 보였다. 내 생일 때는 자신이 직접 만든 반지와 팔찌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연락이 끊겼던 언니는 2년 뒤 내가 다시 편지를 보내자 답장을 했다. 미국의 예술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한국에 잠깐 들렀다고 했다. "그때 내가 펜팔을 하게 된 동기를 아니? 당시 난 심한 우울증으로 거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아예 날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고 싶어서 장난삼아 편지를 보냈거든. 근데 정성스럽게 쓴 답장이 온 거야. 고마웠어. 내 답답한 얘기를 들어줘서."
작년 봄에 다시 언니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반송돼 돌아왔다. 나와 펜팔을 했던 사람들에게 지금 편지를 보내면 반송되는 것이 많겠지 싶었다. 관계를 맺고 사는 것에 대해 무신경하게 지내지만 가끔, 이렇게 연락이 아주 끊어지는 것을 경험할 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고, 오래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