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4일 첫 내한공연을 갖는 미국의 인기 팝스타 켈리 클락슨. 2002년 오디션 프로그램‘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우승해 가수가 된 그는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심사위원으로도 등장할 예정이다.

폴 포츠(Potts)와 수잔 보일(Boyle). 절창(絶唱) 하나로 하찮은 배경을 딛고 일어선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다. 그러나 정작 실제 응시자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우상은 따로 있다. 2002년 '아메리칸 아이돌'의 첫 번째 시즌 우승자 켈리 클락슨(Clarkson)이다.

데뷔 후 8년간 그는 나날이 진화하는 '팔색조' 목청과 다양한 장르에 대한 도전 정신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Spears), 비욘세(Beyonce) 등과 동급의 최고 팝스타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60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했고, 그래미상, 빌보드상을 각각 2회, 11회 수상했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가치를 일찌감치 증명해냈지만 이후 어떤 후배도 그를 넘어서지 못해 이 프로의 장벽이 되고 있는 역설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5월 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올림픽홀. 100만명 가까운 응시자가 몰리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m.net)에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한다. 이메일을 통해 만난 그는 "제가 심사위원이 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며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다른 무리들로부터 자신을 차별화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곡이든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제 방식대로 노래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늘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건,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가?'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저와 함께 일하면서 행복하냐?'고 수시로 질문하죠."

그는 자신의 출신 배경에 대해 복합적 감정을 갖고 있었다. "'아메리칸 아이돌'을 통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면서도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음악 장르에 대해 한계를 설정하기 때문에 거리감을 두고 싶다"고 했다. "우승은 생각도 하지 못했고 세 번째 오디션이 끝날 때까지 제가 TV에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했다"는 그는 "이제는 '아메리칸 아이돌'의 그늘에서 벗어나 경력을 쌓아가는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무대는 '편안한 집'이다. "큰 공연이 아니더라도 평생 무대에 서겠다"며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제 상처를 치료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맨 처음 무대에 섰을 때 이미 '절대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그의 음악은 R&B, 스탠더드 팝, 록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에어로스미스(Aerosmith), 머라이어 캐리(Carey), 어리사 프랭클린(Franklin)의 광팬"이라는 말에서도 그의 장르 포식 근성을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 곡을 쓰기도 하는 그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음악은 만들지도 부르지도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작곡가로 유명한 선배 뮤지션 다이앤 워런(Warren)이 전해준 조언을 가슴에 심은 것이다. "네게 맞는 음악은 감과 배짱으로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죠."

그는 지금도 수시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다. "노래에 감정을 더 절실하게 싣는 법을 배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무대 위에서 가사를 잊어먹는 경우도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생의 꿈"을 묻자 그는 다소 뜻밖의 대답을 했다. "성공적인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언젠가는 아이도 갖고 엄마도 돼야죠. 아이를 축구장에 데려다 주고 싶어요. 지난 8년간 늘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