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희망, 그리고 또 좌절….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나긴 21일이었다.
천안함 실종자 박경수(29) 중사의 사촌형 박경식(36·사진)씨는 박 중사 부인을 대신해 사고해역에 갔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박 중사 가족을 달래며 경기도 평택 제2함대사령부 안의 가족 숙소를 지켰다. 경식씨는 "'그래도 혹시' '1%의 희망'이라는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보낸 21일이었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경식씨는 경기도 수원 집에서 TV를 보다가 천안함 침몰 뉴스를 봤다. 박 중사 이름을 실종자 명단에서 확인한 경식씨는 무작정 평택 2함대 해군아파트 박 중사 집으로 달려갔다. 박 중사 부인 박미선(29)씨는 넋이 나가 있었다. 경식씨는 박 중사가 제2 연평해전에서 더한 일도 겪어서 괜찮을 것이라고 박 중사 부인을 달랬다. 경식씨는 "선체에 구멍이 뚫려 천천히 침몰했다는 말을 듣고 충분히 탈출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오래 힘들게 기다려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생존가능 시한이라는 69시간이 지난 지난달 29일에도 박 중사 가족과 경식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이 "경수가 중사 휴게실이 아니라 보수공작실(비상시 구난장비 배분하는 장소)에 있었다더라. 혼자 있었으니까 산소가 충분해서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 말에 기대를 걸었다.
침몰 9일째인 지난 3일 봄은 다가왔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이날 천안함 인양 준비작업 중 남기훈 상사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식씨는 이때까지도 박 중사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경식씨는 "가족들끼리 사고 발생 10여일이 지날 때까지만 해도 '안 좋은 생각은 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아른거리는 박 중사 얼굴을 뒤로하고 어렵게 잠을 청할 때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살아 있을 거다. 살아 있을 거다. 살아 있어줘라! 경수야… 제발, 제발.'
지난달 30일 고(故) 한주호 준위가 수색작업 중 숨지고 2일 수색작업을 지원하러 나섰던 98금양호까지 침몰한 뒤 남 상사 시신이 발견되자 실종자 가족들은 3일 회의를 했다. 그날 오후 9시40분쯤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자 수색을 중단해달라고 군에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경식씨는 "처음에는 많이 반대했다"고 했다. "구조작업이 어려운 건 알았지만,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게 우리 식구가 확인이 안 된 상황에서 최소한 생사확인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경식씨는 "그전까지만 해도 살아서 돌아올 확률이 반반이었다면 인양 결정하고서는 정말 1%만 남았다고 생각했다"며 흐느꼈다. 그는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지난 12일 수심 45m에 침몰해 있던 함미 절반이 물 위로 나왔다. 경식씨는 "우리 가족들한테는 물속에서 끌고 간다고 했는데 눈에 보이니까, 조금만 끌어올리면 될 텐데 왜 안할까 의구심이 들었다"며 "조금이라도 빨리 끌어올려서 확인하고 싶은데 계속 기다려야 하니 안타깝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함미는 침몰 21일째인 15일 드디어 인양됐다. 경식씨는 "함미가 눈에 보이니까 '내 동생이 떠났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슬픔이 이제서야 현실이 됐다"고 했다. 박 중사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이날 "바람이 있다면 단 하나뿐"이라고 경식씨는 말했다. 박 중사의 7살짜리 딸이 훗날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군인이었다"고 기억하게 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