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프로스포츠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야구는 1982년 3월 27일 공식 출범했다. 서울운동장 야구장(동대문야구장)에서 벌어진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개막전에는 3만여명의 관중이 스탠드를 가득 메웠고,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시구를 했다.

개막전에는 일본야구기구의 시모다 커미셔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쇼리키 구단주도 참석해 한국프로야구의 출범을 축하했다. 3월 28일자 조선일보는 "약 60여명의 일본 취재진이 내한했고 일본의 NHK가 '우주 중계'를 했다"고 보도했다.

각종 행사를 마치고 경기가 시작된 시각은 오후 2시30분. 선공에 나선 삼성의 1번 타자 천보성은 경기 개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MBC 선발 이길환의 초구를 때렸지만 유격수 뜬 공으로 아웃됐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 1루 베이스를 밟은 삼성의 3번 타자 함학수는 안타가 아니라 MBC 1루수 김용윤의 실책으로 살아나갔다. 곧이어 삼성의 4번 타자 이만수<사진 오른쪽>가 때린 좌월 2루타가 역사적인 '1호 안타'의 영광을 안았다.

1호 홈런의 주인공도 이만수였다. 5―2로 앞선 삼성의 5회 초 공격에서 선두타자로 나온 이만수는 MBC 두 번째 투수인 왼손 투수 유종겸을 상대로 좌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이만수는 한국 프로야구 첫 안타와 홈런의 주인공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MBC 김용윤은 첫 실책과 첫 병살타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만수는 첫 홈런으로 KBO로부터 당시 시가 95만원 상당의 등나무 응접세트를 받았다. 이 경기는 양 팀이 홈런 4방을 주고받는 타격전 끝에 연장 10회 말 이종도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린 MBC가 11대7로 이겼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한국인으로서 처음 홈런을 날렸던 사람은 송운(松雲) 이영민(李榮敏·1905~1954·사진 왼쪽)이다.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 축구, 농구 선수로도 활약한 조선 최초의 스포츠 스타 이영민은 1928년 6월 8일 연희전문 소속으로 경성의전과의 정기전에서 경성운동장(동대문야구장) 최초의 홈런을 때렸다.

1934년 일본 대표팀과 메이저리그 올스타팀과의 친선경기에 '조선의 대표선수'로서 출전한 경력도 갖고 있는 이영민은 해방 후 대한야구협회 이사 등 야구 행정가로 활동하다가 1954년 셋째 아들 이인섭(당시 20세)이 포함된 괴한들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대한야구협회는 1958년부터 매년 국내 최고 타율을 기록한 고교 선수에게 '이영민 타격상'을 수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