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씨

작곡가 박춘석 선생이 10여년 긴 투병 끝에 지난달 14일 타계했다. 조선일보 3월 15일자 A29면을 비롯, 신문마다 앞다투어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들을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 허전함을 느꼈다. 기사에는 온통 이미자와 패티김뿐이었다.

박춘석 사단의 원조 멤버라면서 지면을 두 가수의 노래 제목과 가사들로 가득 채워 놓은 듯했다. 사정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 박춘석 선생이 몇몇 가수만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배출한 좁은 시야의 작곡가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사실 박춘석 사단의 원조는 권혜경이다. 박 선생은 권혜경과 손을 잡고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클래식과 대중가요를 혼합하여 듣기 좋고 부르기 쉬운 우리만의 정서가 담긴 그 당시 처음 들어보는 세미클래식한 노래들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우리 가곡 '동심초'를 편곡해 권혜경이 불러 크게 히트하면서 가곡의 대중화에도 선구역할을 했다. 당시 동아방송의 아마추어 노래자랑 코너에서는 젊은 아가씨들의 단골 참가곡이기도 했다. '첫사랑의 화원', '물새 우는 해변', '청춘 일요일', '명동 아줌마', '이 마음을 아시나요', '눈물의 자장가'….

모두가 박춘석과 권혜경이 콤비가 되어 히트시킨 명가요들이었다. 권혜경과 연애를 한다는 둥 시시콜콜 스캔들로 당시 인기 연예잡지 '아리랑'의 지면을 장시간 장식할 만큼 두 사람은 돈독했다.

그들의 화려한 시절을 직접 보고 들으며 살아온 60대 전후의 사람들은 박춘석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가수가 권혜경이었다. 권혜경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박춘석 선생마저 돌아가셨으니 어쩌면 두 분이 하늘나라에서 다시 왕년의 콤비가 되어 또 다른 세계의 음악을 개척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어떤 가수는 박춘석의 세미클래식한 노래를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가수는 자기밖에 없었다고 자화자찬했는데 사실 그것은 선배가수들에게 실례를 범한 것이 아닐까 한다. 권혜경이나 최양숙 같은 경우 정통클래식을 전공했으며 박춘석의 클래식한 곡들을 뛰어난 실력으로 소화해냈다.

요즘 젊은 기자들이 왕년의 스타들에게 심취했던 60세 전후의 가요팬들을 모니터로 활용해 자문을 해 본다면 이번처럼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기사는 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박춘석 사단에 이봉조 사단의 가수 이름이 들어가고 이봉조 사단에 신중현 사단의 가수 이름이 나오는 그런 엉뚱한 기사는 물론이고, 박춘석 사단의 진짜 원조멤버인 권혜경이 빠져버리는 그런 허전한 기사도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