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미술평론가

몇 년 전 일본 나리타 공항의 입국장을 통과할 때였다. 내 큰 가방에는 서울에서 열린 테크놀로지 아트 전시회에 출품했던 일본 작가의 작품이 담겨 있었다. 작가의 예술작품이라곤 하지만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구한 여러 전자부품들이 전선가닥에 뒤엉켜 정체가 모호한 형국이었다.

"이거 뭐요?" 세관원이 뭔가 미심쩍다는 투로 물었다. "아! 이건 쓰레기요. 다른 말로는 현대미술이라고도 하지요." 나는 다소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뭐요, 쓰레기?" 세관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세관원은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함께 껄껄대며 웃었다. 작품은 무사히 통과됐다.

그날 저녁 동경 시내에서 일본 미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쓰레기' 통관 사건은 당연히 화제가 되었다. 외국 전시를 마치고 공항을 통과할 때마다 겪는 난처한 사정은 일본의 전시기획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세관원의 귀찮은 질문을 받으면 현대미술 작품을 '쓰레기'로 우기자는 결의를 하면서 모두들 즐거워했다.

사실 그 작품은 이미 서울의 전시장에서 진짜 쓰레기가 되었던 적이 있다. 내가 조립과 설치를 하다 말고 작가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간 사이에 청소부가 작품이 쓰레기인 줄 알고 치워버린 것이다. 우리는 춥고 컴컴한 길가의 쓰레기통에서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부품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작품으로 겨우 완성시켰다.

올해는 서울·부산·광주에서 동시에 대형 국제 비엔날레가 열린다. 현대미술이란 이름의 즐거운 쓰레기들이 공항을 무사히 통과하여 우리를 기쁘게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혹시라도 진짜 쓰레기통으로는 가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