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달 산업부 차장대우

"하늘나라에 계신 왕회장(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덩실덩실 춤추며 기뻐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충남 당진군 송산면에 현대제철 일관제철소가 이달 8일부터 본격 상업생산을 시작한 데 대해, 현대·기아차그룹의 한 원로는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2.5배 크기인 이 제철소는 용광로에 철광석을 넣어 쇳물을 만들고 불순물을 제거한 후 쇠판을 뽑아내 압축하는 과정을 모두 해낼 수 있는 곳으로 한국 산업계를 통틀어 사상 두 번째다. 이로써 철강업계는 40여년 만에 포스코 독점을 깨고 '양강(兩强) 경쟁 구도'로 재편됐다.

사실 이런 '쌍두(雙頭) 체제'는 더 일찍 나올 뻔했었다. 1978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제2제철소 추진 방침을 굳히자, 포철의 박태준과 현대의 정주영이 격돌했다. "철강사업에 민간 기업이 진입해야 경쟁력이 높아진다"(정주영)는 주장과 "과당 경쟁으로 철강업계가 공멸한다"(박태준)는 논리가 팽팽하게 맞섰다. 고심 끝에 박 대통령은 박태준의 손을 들어줬다. '생각하는 불도저'(정주영)가 '한국의 철강왕'(박태준)에게 분루를 삼키는 순간이었다.

정주영은 자신의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하고 싶은 것은 일관제철소 건설이었지만 좋은 시절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이 숙원을 풀고 말 작정"이라고 썼다. 삼미특수강·한보철강 인수 등에 이어 2006년 10월부터 6조2300억원을 쏟아붓는 대역사 끝에 일관제철소를 세운 정몽구 회장은 부친의 32년 묵은 '한(恨)'을 푼 셈이다.

이런 현대제철에 대해 가장 긴장하고 불편해하는 곳은 포스코다. 오랜 구원(舊怨)에다 손쉽게 영업하던 환경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주영이 살아있다면 지금이야말로 박태준과 악수하고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세계 1·2위의 철강 강대국인 중국·일본에 둘러싸인 한국 철강업계 현실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강(粗鋼) 생산능력(5억6780만t)이 우리의 11배 가까이 되는 중국은 세계 최대 철강 소비국인 동시에 최저가에 철강 제품을 생산·수출하는 나라다. 일본(8750만t·세계2위)은 세계 최고의 철강 품질과 기술력을 지닌 실력자다. 포스코 고위 임원 한 사람은 "일본의 제품력을 100으로 보면 우리는 아직 95~97이다. 또 중국은 저가 매력에다 품질까지 고급화하고 있어 위협적이다"고 했다. 한·중·일 철강 전쟁에서 우리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철강 원료 확보도 '아킬레스건(腱)'이다. 우리의 철강 원료자급률은 20%(해외광산 지분참여 등 포함)대로 40%가 넘는 중국·일본보다 훨씬 취약하다. 철광석·유연탄 같은 원료가격 급등이 곧바로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결정타를 입는 구조인 것이다. 올 2분기 국제 철광석 가격만 80% 정도 치솟을 전망이다.

이런 형편에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경쟁을 통한 상승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면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중국 철강사들처럼 때로는 똘똘 뭉쳐 메이저 철광석 회사들과 원료가격 공동 협상을 벌이는 것도 방법이다. 정주영과 박태준의 후예들이 반목과 질시 대신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할 때, '글로벌 철강 코리아'의 앞날은 더 밝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