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 긴 악연(惡緣)의 고리를 끊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가 10일 러시아 스몰렌스크에서 추락해 레흐 카친스키(Kaczynski) 대통령을 포함해 탑승자 96명 전원이 사망하자, 러시아의 일부 언론은 11일 그같이 표현했다. 작년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의 '미국 미사일방어(MD)망 폴란드 배치 철회' 발표를 계기로 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에 훈풍이 불기 시작한 와중에 돌연 추락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 사고가 양국 관계를 일순간에 얼어붙게 하지 않을까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사고 발생 후 30여시간 만에 신속히 카친스키 대통령의 시신을 수습, 바르샤바로 돌려보낸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카틴 숲 학살사건' 추모 행사에 카친스키 대통령이 개인 차원으로 방문하다 사고를 당한 점을 두고 논란이 제기되는 등 양국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푸틴의 초대를 받지 못한 카친스키 대통령이 추모행사에 참석하러 가다 사고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푸틴이 고의로 카친스키를 배제한 것이 사고의 발단이 됐다는 뉘앙스다.
러시아의 생각은 다르다. 카틴 숲 추모행사를 주관한 푸틴 총리의 폴란드측 카운터파트는 도널드 투스크(Tusk) 총리인 데다,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를 혼합한 폴란드 정치체제에서 정치적 실권은 투스크 총리에게 있기 때문에 총리를 초청해 지난 7일 추모행사를 가진 것으로 "도리를 다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러시아 최고위급 정치인과 폴란드 지도자가 공동추모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폴란드 대통령을 초청치 않은 푸틴의 '원죄(原罪)'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폴란드 국가원수가 러시아 영토에서, 그것도 러시아제(製) 전용기를 타고 가다 사망한 데 대해 러시아 정부는 도의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더구나 지난 2005년부터 집권한 카친스키는 친미(親美)·반(反)러시아 성향의 인물이다.
카친스키의 집권 기간에 폴란드는 러시아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2005년 5월엔 러시아인들이 혐오하는 체첸반군 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Dudayev)의 이름을 딴 '두다예프 광장'을 바르샤바 시내에 조성했다. 또한 작년에는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 뒤에 독일·소련 사이에 '독·소 불가침조약'이 있었고 독일이 침공한 지 18일 만에 소련도 폴란드를 침공한 만큼 러시아가 당시 조약 체결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해 이 문제에 침묵하던 러시아를 비난했다.
사실 폴란드·러시아는 '악연의 고리'가 오래됐다. 양국 간 분쟁의 역사는 500년이 넘는다. 16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과 모스크바대공국 간의 전쟁, 1605~1618년 폴란드-루스차르(러시아제국 이전의 러시아) 전쟁, 1632~1634년 스몰렌스크 전쟁, 1792년 폴란드-러시아제국 전쟁 등 100년에 3차례꼴로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 상호 민족적 감정의 앙금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