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23일 일흔 넘은 소련 외교관이 극비리에 청와대 상춘재(常春齋)로 안내됐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겠다고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6월 4일 역사적인 한·소정상회담이 열렸다. 청와대를 방문해 회담 성사 소식을 알렸던 외교관이 아나톨리 도브리닌이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기지 건설을 강행하면서 3차대전의 위기가 고조되던 1962년. 흐루시초프 소련 서기장은 이 쿠바사태의 해결 조건으로 터키에 배치된 미군 미사일을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 형의 메시지를 들고 찾아간 사람이 도브리닌 주미(駐美) 소련 대사였고, 사태는 풀렸다. 케네디 대통령은 평소 보좌관과 통역까지 물리치고 도브리닌을 만났을 만큼 그의 비중과 역할을 인정했다.

▶도브리닌은 1962년부터 86년까지 24년 동안 주미대사로 일하면서 미국 대통령들로부터 특별대접을 받았다. 존슨은 그에게 전용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재선 불출마 결심을 장관들보다 먼저 말해줄 정도였다. 닉슨은 키신저에게 "중요한 문제는 도브리닌하고만 상의하라"고 지시했다. 닉슨이 모스크바에서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서명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1)도 '키신저-도브리닌' 라인의 작품이었다. 키신저는 1973년 국무장관이 된 뒤 도브리닌이 언제든 국무부 직원주차장을 거쳐 장관 전용 엘리베이터로 집무실까지 찾아올 수 있는 특전을 줬다.

▶1919년 모스크바 근교 크라스나야고르카에서 배관공 아들로 태어난 도브리닌은 1952년 참사관으로 처음 미·소 외교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회고록 'In Confidence (믿음으로)'에서 "미국의 트루먼부터 부시까지, 소련의 스탈린에서 고르바초프까지 모든 정상회담에 관여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냉전시대 모든 국제문제를 지켜본 유일한 외교관"이라고 자랑했다.

▶'미·소 외교의 전설' 도브리닌이 지난 6일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 관료들이 "아저씨 같은 외교관"이라고 했던 그였지만, 조국을 배신하고 미국으로 넘어온 인사들과는 눈도 맞추지 않을 만큼 철저한 소련인이기도 했다.

▲10일자 A30면 ‘만물상-도브리닌 전설’ 중 ‘브레진스키’는 ‘브레즈네프’의 잘못이므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