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미아리고개
올해 아흔넷인 외할머니는 6·25 때 돌아가신 작은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똑똑한 시동생이었어. 학생회장이었고 학도호국단장도 했어. 그래서 인민군 놈들은 가만히 둘 수 없다고 했어." 인민군은 철사로 작은 외할아버지의 손을 묶어 끌고가 대전형무소에 가뒀고, 나중에 형무소 안 우물에서 시신이 발견됐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이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나는 TV에서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는 노래가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인다.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노랫말이 작은 외할아버지 이야기와 어쩜 그리 똑같을까.
언젠가 '단장(斷腸)'의 뜻이 궁금해 어머니한테 물어봤다. 창자가 끊어지도록 괴로운 것이라고 답하셨다. 나는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자란 세대지만, 우리 가족이 바로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같은 비극을 겪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론 어른들의 삶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나는 노래방에 가면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부르며 가슴 저릿하게 노랫말의 의미를 되짚는다.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친구들은 내가 웃기려고 부르는 줄 알고 웃어대서 참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