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사과가 있다고 그래요. 뭘까요?"

8일 오후 3시 30분쯤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시립미술관 3층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부산전'의 정연은 도슨트(전시물을 안내하는 안내인)의 얘기에 30~40명의 관람객들은 숨을 죽였다. 아이들은 아예 이 도슨트의 입에 시선을 못박고 있었다. "이브의 사과…"라고 말을 잇자 누가 "뉴턴의 사과"라고 맞장구쳤다.

정 도슨트는 "그래요, 과학자 뉴턴의 사과가 있고요. 다음은 '세잔의 사과'예요"라고 말했다. 세잔이 "색과 형태를 분석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사과를 즐겨 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모두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시회의 '스토리텔링'이 관람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사실 그림은 '이야기'다. 작가가 감상객에게 그림을 통해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 전시회에서 선보이고 있는 샤갈의 '한밤중'은 나치 독일이나 스탈린의 소련 같은 전체주의 정권에 위협받고 있는 고향 마을에 대한 향수를 전하고 있다. 르누아르가 자기 부인을 모델로 한 '알린 샤리고의 초상'을 실제보다 뚱뚱하게 그렸는데 이는 부인에 대한 남들의 '흑심'을 꺼렸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전시회를 보러 온 김영진(12·초등학교 5년)군은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을 직접 보니 신기한데 설명을 들으니 더욱 실감나고 재밌다"고 말했다.

신화나 성경 속의 얘기를 소재로 그린 고전주의와 사실주의가 다른 것은 '볼 수 있는 것을 그대로 그렸다'는 점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이전 화가들이 빛의 선물, 그러니까 빛이 보여주는 대상을 그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면, 인상파는 빛 자체를 그리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모네…'에서 전시 중인 모네 '앙티브의 아침', 피사로 '퐁네프의 오후 햇살' 등이 그 대표작이다.

빛에 따라 사물의 형태가 흔들리면서 전통적 시각상이 해체된 인상파, 사물의 질서를 본격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입체파…. 이런 서양화 유파의 변천은 사진과 영화·TV의 발명 등 과학 기술의 발전, 사회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사진이나 영화 등을 넘어서려는 화가들의 고민, 성찰이 유파의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 '이야기'가 그림이나 화가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로, 과학으로 퍼져갈 수 있다는 말이다.

쿠르베의 '숲의 언저리'는 화려한 프랑스 왕궁이 있었던 숲의 황량함을 사실적으로 묘사, 시민혁명 선동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마네의 '키어사지호와 앨라배마호의 해전'은 미국 남북전쟁 중 남군과 북군이 프랑스 해안에서 벌인 전투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이야기가 정치로 뛰는 셈이다.

'르그랑양의 초상(르누아르)'과 '알린 샤리고의 초상(〃)', '세잔 부인의 초상(세잔)', '푸른 눈(모딜리아니)', '카르멘으로 분장한 에밀 앙브르의 초상(마네)'…. 이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는 초상화다. 부인과 화가의 금실, 인간의 심리와 감정을 읽고 표현해내는 작가의 눈 등이 이야기로 풀린다. 차림새에 따라 해당 인물의 사회적 신분을 읽어낼 수 있다. 한 발 더 나가 한국적 상상력을 더한다면 이들의 관상을 살펴 모델의 삶을 추정해 볼 수도 있다.

이 전시회의 작품들은 그림이나 미학에서 정치·사회·경제·인간·종교 등으로 종횡무진 이어지면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애플의 '아이폰'이 서비스 콘텐츠로, 영화 아바타가 3D에 스토리텔링으로 대박을 터뜨린 데서 드러나듯 요즘 '미래형 능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그 '이야기'다.

부산시립미술관 조일상 관장은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는 말이 있듯 '스토리텔링'은 세상을 창조하는 인류 최고의 장치인지도 모른다"며 "이번 전시회에 담긴 무궁무진한 대가·명장들의 이야기 속에 넘실대고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 역발상의 세례를 많은 사람들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오는 6월 2일까지 휴관없이 매일(오전 10시~오후 7시) 열린다. 관람료는 일반·대학생 1만2000원, 중·고생 9000원, 초등학생·유치원생 7000원이고, 20명 이상 단체는 할인해준다. 인터파크 인터넷 예매도 1000원 할인받을 수 있다. 특히 오는 16일까지 부모를 따라온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무료다. ☎(051)74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