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鳶)만 만들며 살아왔어요. 사라져가는 연을 새로운 모양으로 만드는 것은 전통문화도 계승하는 일이죠."
백발에 왜소한 체구인 변하일(邊夏日·74)씨는 웃었다. 40년 동안 창작 연을 만들고, 각종 대회를 휩쓴 사람이다.
그가 창고로 쓰는 서울 군자동의 작은 방은 온갖 연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주로 작은 연 수십개를 연결한 세트연을 만드는데, 월드컵연, 청사초롱연, 수원성연, 강강술래연 등 30가지(연의 낱개로는 1000여개)가 상자에 보관돼 있다. "이걸 다 펴 올리면 운동장 가득 찰 거예요."
변씨는 평화시장 양말 도매상이던 40년 전, 6살 아들이 10원짜리 가오리연을 사오면서 연과 인연을 맺었다. 비닐 연이 마음에 들지 않아 빨강·노랑·파란색을 칠했다. "싸구려지만 기왕이면 전통 연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웃는 아들을 보니 뿌듯하더라고요."
이후 틈틈이 창작 연을 만들었다. 첫 작품은 학연(鶴鳶). 스티로폼을 깎아 학을, 흰 나일론 천으로 날개를 제작했다. 뼈대는 경조 화환 고정용 대나무를 활용했다. "입체로 만든 학연을 보고 '그게 무슨 연이냐' '날기는 하냐'며 사람들이 비웃었어요."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대나무 붙이는 방법과 위치를 바꿔가며 한강에서 날려보곤 했어요." 이렇게 만든 학연이 1977년 한국민속촌에서 열린 전국 연날리기 대회 창작부에서 우승했고, 그는 연에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했다.
이후 나비연, 청사초롱연, 잠자리연, 금붕어연, 거북선연, 대장군연을 만들었다. 88올림픽 개최기념 행사에선 참가국 만국기·무궁화·용이 달린 연을 선보였고, 1996년 '수원성 축성 200주년 기념 세계연날리기 대회'에서는 수원성 모양의 연으로 우승했다. 2002 월드컵 때는 축구공 20개와 국가대표팀 마스코트 호랑이를 매단 연을 띄웠다. 총 40차례 넘게 우승했고, 1994년엔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연의 소재는 주로 동요나 전래동화, 민속놀이에서 얻는다. 전통 연은 전통 소재로 만들어야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자료조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입체감을 살리려고 동물 일러스트레이션 책을 참고했어요. 수원성연을 만들기 위해 수원시청에서 자료를 얻고, 만국기연을 만들면서 올림픽준비위원회에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이 연들은 저의 '자식들'입니다. 사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팔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