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천안함 실종자 동료냐, 정말 전우들 맞냐!"
29일 오후 4시쯤 경기도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 머물던 실종자 가족들이 부대 장병들이 이날 연병장에 설치한 천막 50여개를 발견하고 달려가 천막을 부수며 오열했다. 천안함 실종자들의 생존가능 시한(29일 오후 6시 30분)을 앞두고 가슴 졸이며 구조소식을 기다리던 시각이었다. 군은 "내빈들이 오시면 쉬도록 준비한 곳"이라고 말렸지만, 50개나 되는 천막 수와 안에 갖춰진 장판과 난로를 본 가족들은 "빈소가 아니냐"며 분을 참지 못했다.
천막을 부수다 주저앉은 한 남성은 "사람 찾을 생각은 안하고 장사 지낼 생각만 하느냐"며 통곡했다. "내 아들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며 울부짖는 중년 여성이 여럿 눈에 띄었다. 주변에 있던 젊은 장병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2함대측은 "더 많은 가족들이 올 것을 대비해서 편의시설을 마련한 것뿐"이라고 거듭 해명했지만 가족들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실종자 46명의 가족들은 생환의 마지막 고비인 29일 하루종일 피를 말리며 구조소식을 기다렸다. 29일 오전 8시쯤 한가닥 희망을 품고 백령도 인근을 맴돌다 속초함을 타고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제4부두로 돌아온 실종장병 가족 66명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휘청거리며 뭍으로 발을 내디뎠다. 실종자 가족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벌겋게 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쏟아냈다.
지칠 대로 지친 가족들은 군부대 안에 마련된 임시 숙소로 들어서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방바닥으로 무너졌다. 외아들 서승원 하사를 찾아 백령도를 다녀온 남봉임(45)씨는 "애는 죽음과 싸우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느냐"며 물도 입에 대지 않았다. 서 하사가 집에 남겨놓은 휴대전화를 자식 보듯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붉힐 뿐이었다.
오전 9시쯤 '함미의 정확한 위치를 발견했다'는 군의 발표가 나오자, 가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부는 "이제 구조만 하면 된다"고 안도했지만, 대부분은 "빨리 구조 작업을 진행해야지 뭐 하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사정은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구조작업을 지켜보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전 8시쯤부터 참수리호에 옮겨타고 함미가 발견된 지점으로 온 가족들은 줄곧 시커먼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 둘씩 물속으로 사라지는 잠수부들을 쳐다보며, 말없이 두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조류 때문에 이내 작업이 중단되자, 가족들은 가슴을 치며 한숨을 쏟아냈다.
갑판 위를 떠나지 못하고 바다만 바라보던 가족들은 "오늘이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며 "지금 저 속에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빨리 구조해 달라"고 말했다. 문규석 중사의 가족 박형준(38)씨는 "함미를 찾은 것 같은데… 빨리 구해주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김태석 중사의 형 김태원씨도 "생존자를 어떻게 꺼낼 것인지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 (군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날 오후 잠수부들이 천안함 함미로 내려가 망치로 선체를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는 보도가 나오자,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TV를 보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아!" 하고 탄식을 쏟아내며 사방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군의 구조작업만 기다릴 수 없다며 직접 나서려던 가족도 있었다. 김종헌 중사의 숙부 김호중(60)씨는 "내가 35년 동안 배를 탄 사람"이라며 "서해대교 쪽에서도 10년 넘게 일했다. 침몰했을 때 군에 '물때를 맞춰서 수색 작업을 해야 한다'고 몇번이나 말했는데도 듣지 않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해군은 당초 이날 저녁 8시까지만 천안함 함미를 탐색할 예정이었으나 실종자 가족 요청으로 9시30분까지 탐색 시간을 연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