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철(44)이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라이브의 황제로 통하는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콘서트 시장의 최강자.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기왕의 히트곡에 안주하지 않고 조카 혹은 아들·딸뻘인 아이돌 그룹들과 신곡으로 경쟁하는 당찬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5월부터 데뷔 25주년 기념 전국 투어를 갖는 그는 6월 5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무대로 5만여명 관객 앞에서 대형 공연을 펼친다. '오케스트락'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진행되는 이번 투어에는 60인조 오케스트라가 그의 뒤를 받친다. 그는 "스콜피언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야니가 한자리에 모인 듯한 느낌의 공연이 될 것"이라며 "소리의 감동만으로 관객들을 흥분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후배들과 함께 작업한 25주년 기념 앨범도 곧 발매될 예정.

1985년 말 록밴드 부활의 보컬리스트로 음악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25년 후 내 모습이 이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웃었다. "당시 우리의 우상은 현식이(김현식)형이었잖아요. 언더그라운드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저는 록밴드를 계속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27일 경기도 안양의 콘서트장에서 만난‘라이브의 황제’이승철. 올해 가수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딥 퍼플,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듣고 로커(rocker)의 꿈을 갖게 됐다"는 그는 "딥 퍼플, 화이트 스네이크 등을 거쳤던 데이비드 커버데일(Coverdale)의 목소리를 동경했다"고 말했다. "당신의 미성(美聲)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고 하자 "어린 시절에는 커버데일과 꽤 비슷한 굵고 짙은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며 "하지만 이후 일찌감치 개성을 찾았다"고 했다.

"저는 남들의 노래를 모창하는 시기가 거의 없었어요. 19세에 데뷔를 했고 저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남다른 개성을 키울 수 있었던 거죠. 테크닉, 톤 어느 쪽으로도 저를 흉내 내는 가수는 찾아보지 못했어요. 그만큼 제 노래가 순수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죠."

그는 "노래는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잘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훈련을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는 나얼, 김범수, 김태우, 소녀시대의 태연, 티파니 등을 그런 재능을 타고난 가수들로 꼽았다.

그의 가수 인생에 아직도 건재하게 활동 중인 록밴드 부활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제게는 부활이죠. 부활은 대한민국 최초의 아이돌 록밴드였어요. 1집은 100만장이 넘게 팔렸잖아요. 86년에 63빌딩에서 공연을 하는데 6000여명의 관객이 꽉 들어찼었죠. 대부분 여고생들이었고요. 선착순으로 표를 판다고 했더니 전날 밤부터 건물 앞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사람이 수도 없었어요."

그는 25년 가수 인생 동안 가장 중요한 자신의 노래들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희야',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네버엔딩 스토리' 등 3곡을 선택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가수 이승철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어준 노래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팔리는 노래'에 대한 고집이 강한 가수다.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그런 노래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승철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노래가 바로 잘 팔리는 노래잖아요. 우리가 누굽니까? 상업 가수 아니에요? 팔리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우리의 본업이라고요. 노래에 심각한 의미와 음악적 욕심을 과도하게 집어넣으려고 하면 덫으로 돌변하는 수가 있어요. 저는 해가 갈수록 미련과 고집을 버리고 힘을 빼는 법을 배우게 되더라고요."

결혼 이후, 이승철의 총괄 매니저로서 '변신'한 부인, 그리고 두 딸과 함께 안정된 일상을 즐기고 있는 그는 "여태까지의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먼 훗날 가수 이승철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지 묻자 그는 "사람들 많이 다니는 곳에 흉상 하나쯤 남아있는 가수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