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연출'한 '건강보험 개혁입법 드라마'의 성공은 21일 오후 4시 예고됐다. 의회 본회의장 3층에 위치한 기자실에 건보개혁안에 반대해 온 민주당의 바트 스투팍(Stupak) 의원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안내문이 떴다. 고등학교 교실의 절반도 안 되는 인터뷰실에 순식간에 70여 명의 기자가 모여들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빽빽한 공간에 땀 냄새가 꽉 찼다. 기자들을 뚫고 단상에 선 백발의 스투팍 의원이 백악관과 합의한 서류를 카메라 앞에 흔들었다. "대통령이 생명을 존중하며 낙태에 반대하는 우리의 의견을 행정명령에 반영하기로 함에 따라 표결에 찬성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이 스마트폰의 작은 자판을 빠른 속도로 두들기며 긴급 속보를 띄웠다. 방송에는 즉각 "스투팍 의원, 건보 개혁 찬성" 자막이 긴급뉴스로 나왔다. 스투팍 의원은 이날 오전까지도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한 끝에 낙태 문제에 관한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허(虛)를 찔린 공화당은 반격에 나섰다. 오후 5시 15분. 공화당의 조 피츠(Pitts) 의원이 반대 성명을 의회에 배포했다. "양당의 누구도 미국 역사에서 가장 '친(親)낙태'적인 대통령의 손에 건강보험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 낙태 허용에 100% 찬성하는 기록을 남겼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1시 본회의장에서 시작된 양당의 건보개혁 찬반 토론은 10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양당의 의석 한가운데 선 루이스 슬로터(Slaughter·민주) 의원과 데이비드 드라이어(Dreier·공화)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끊임없이 양당의 '전사(戰士)'를 불러냈다. 각 의원들의 발언에 할애된 시간은 단 1분. 민주당의 데이비드 스콧(Scott) 의원은 "공화당에서는 우리가 건보개혁에 찬성하면 중간선거에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오늘 찬성 투표를 하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는 것"이라고 해 박수를 받았다. 공화당의 클리프 스턴스(Stearns) 의원은 "1조달러를 들여 경제를 악화시킬 수 있는 법안에 어떻게 그렇게 쉽게 찬성할 수 있느냐"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양당의 찬반토론은 치열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이 나올 때 "우~" 하는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집기를 집어던지거나 품격 없는 행동은 없었다.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의원도 없었다. 의원들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정보를 교환하며 긴장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오후 3시. 낸시 펠로시(Pelosi) 하원의장이 본회의장의 뒤편으로 중진 의원들을 소집했다. 한국의 국회의장이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는 것과는 달리 펠로시 의장이 민주당 법안 통과를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같은 시각, 하원 본회의장과 기자실이 있는 의사당 남측 잔디밭에서는 5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대형 성조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Kill the Bill(건보개혁법안을 폐기하라)" 플래카드가 잔디밭을 점령했다. "건보안 통과하면 USA=USSR (미국이 소련 된다)", "세금이 너무 많다"는 피켓들이 보였다. 이들은 해가 질 무렵에는 건보개혁안에 앞장선 펠로시 하원 의장을 야유하는 뜻으로 "내~앤시"를 연호하기도 했다.

이날 밤 10시 45분 하원에서 건보개혁법안이 통과된 후, 11시 37분에는 부수적인 내용을 담은 조정법안도 통과돼 건보개혁안 토론은 10시간 37분 만에 막을 내렸다. 환호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민주당 의원들과는 달리 공화당 의원들의 얼굴에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건보개혁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오후 1시부터 약 800명이 앉을 수 있는 본회의장 방청석은 계단까지 시민들이 들어찼다. 시민들이 많이 몰리자 약 1시간씩만 방청을 허용했다.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온 이안 로버츠슨(Robertson)은 "역사적인 순간을 보고 싶어서 의원실을 통해 방청권을 얻었다"고 했다.

건보개혁안이 마무리된 후, 11시간 만에 의사당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할 때 자정이 넘었는데도 시민 100여 명이 환호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