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고야(名古屋) 고등재판소 가나자와 지부는 지난 8일 일제(日帝)에 의해 강제 징용된 한국인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후지코시(不二越)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되나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한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은 이미 소멸한 만큼 (회사측의) 배상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한일 청구권 협정 2조는 "(한·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고 돼 있고, 이 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는 한국에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3억달러'를 제공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협정으로 한국인의 개인적 청구권도 없어졌다"는 입장이고, 일본 법원도 대개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려왔다.
그러나 후지코시사 피해자와 유족들이 14일 공개한 일본 외무성 대외비 문건을 보면 1965년 당시 일본 정부가 "국가 간 협정을 체결한 뒤에도 피해를 당한 개인의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법률적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1965년 4월 6일 작성된 '평화조약에서 국민의 재산 및 청구권 포기의 법률적 의미' 등 3건이다.
일본 외무성은 문건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 2조의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국가가 개인을 대신해 행사하는)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것이지, 국민의 재산(개인 청구권)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1965년 당시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가 한국인 피해자를 대신해 청구권을 행사하는 절차적 권리는 포기했어도, 한국인 피해자들이 직접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실체적 권리는 살아 있는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일본 정부와 법원의 입장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토야마 내각은 최근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1960년 미·일 안보조약 당시 비밀리에 맺었던 미국 핵 함정이 유사시 일본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 '핵 밀약' 문서들을 공개했다. 일본은 50년간 미·일 핵 밀약의 존재를 부인했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민간 차원의 압력에 밀려 2008년 6월 한일 협정 관련 문서 일부를 민감한 부분을 검은색으로 칠한 채 공개했을 뿐 문서 전체의 공개엔 반대하고 있다. 한국은 2005년 3만5000쪽에 달하는 한일 협정 관련 한국측 문서 대부분을 공개했다.
일본은 한일 협정 문서 전체를 공개하면 장래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협상 때 일본 측에 불리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문서 공개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이 한일 문서를 봉인(封印)한 덕으로 대북(對北) 협상에서 얻을 이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나, 일본이 강제 징용자의 목숨과 피와 땀과 눈물을 외면함으로써 입게 될 손해는 앞으로 세월이 갈수록 더 커져 언젠가는 양국의 미래관계에 쐐기를 박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