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많이 다녀본 이라면 아마 공감할 것이다. 때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관광 도시보다 그 주변에 있는, 비교적 덜 알려진 작은 시골 마을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카를 교 아래 보이는 밤 풍경이 황홀한 체코 프라하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아담한 마을 체스키 크롬노프와 '동유럽의 진주'라 불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교외 전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센텐드레가 그 좋은 사례다.

뉴욕·파리·로마 같은 세계적인 관광 도시의 번잡함에 싫증이 난 여행객, 혹은 프라하나 부다페스트만 보고 떠나려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 사람들이라면 이 두 지역까지 구경한 후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어떨까.

프라하의 예쁜 점만 뽑아 압축한 듯한 체스키 크롬노프, '헝가리의 몽마르트르'라 불리며 골목마다 예술적 정취가 진하게 밴 센텐드레는 관광객들의 가슴속에 프라하·부다페스트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겨 놓을지 모른다.

◆프라하의 예쁜 축소판, 체스키

프라하가 잔뜩 멋을 부린 화려한 미녀라고 한다면, 체스키는 그 미녀의 순수한 소녀 시절 모습 같다. 분위기나 생김새가 쏙 빼닮았지만, 체스키 쪽이 훨씬 아담하고 아기자기하면서 어딘지 순박하다.

도시 주변을 굽이굽이 흐르는 블타바 강, 중세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골목, 시선이 닿는 곳마다 뾰족한 붉은 지붕 집이 보이는 체스키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이곳은 1992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체스키에 도착하면 우선 체스키 크롬노프 성(城)을 둘러봐야 한다. 프라하 성에 이어 보헤미아 지방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이곳은 박력이 넘치면서 섬세하고 독특한 아름다움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는 체스키를 고향처럼 여겼다. 세월이 농축된 크롬노프 성에서 그늘진 뒷골목까지 체코의 작은 도시 체스키는 예술의 향기를 내뿜는다.

그 이유는 13세기에 처음 지어진 이래 차례차례 새 건물이 들어서 시대별 건축 양식이 한 개의 성 안에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성 꼭대기 7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아담한 체스키가 한눈에 펼쳐진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겹겹이 서 있는 빨간 테라코타 지붕집, 그 주변을 둘러싼 눈이 시릴 만치 짙푸른 녹음(綠陰), 푸르른 블타바 강물은 어린 시절 읽던 동화책 속의 작고, 예쁘장한 마을을 연상케 한다.

성탑까지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정도로 좁고 어두운 나선 계단을 머리를 부딪히지 않게 올라가야 하지만 아무 곳에나 카메라를 놓고 셔터를 눌러도 그대로 한 장의 그림엽서가 될 정도다.

성탑을 내려와 땀을 식히며 성의 정원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다. 평화로운 짙은 녹색 정원에서 아기 다람쥐가 뛰노는 광경을 보면 시간이 잠시 달음박질을 멈추고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 계획 없이 도심에서 좁은 골목을 하염없이 거닐어도 볼거리는 충분하다.

체코 체스키에서 마주치는 마리오네트 인형들.

모차르트나 마녀 모습을 한 마리오네트(긴 줄을 조종해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목각 인형), 이색적인 장신구, 허기진 배를 자극하는 뜨끈한 굴라시(우리 식의 육개장과 비슷한, 고기가 들어간 매콤한 수프 요리), 카페나 동네 주점에서 느긋하게 맥주를 들이켜는 사람들….

이 모두가 소박하지만 정성이 깃든 작은 공예품 같다. 이런 장면을 감상하노라면 자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가 왜 체스키를 사랑했고 이곳을 '제2의 고향'처럼 여겼는지 이해할 수 있다.

◆헝가리의 몽마르트르, 센텐드레

센텐드레는 부다페스트에서 북쪽으로 19㎞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부다페스트와 사뭇 다르다. 훨씬 작고 조용하지만, 대신 보다 깨끗하고 평화롭다. 센텐드레는 원래 14세기 무렵부터 교역 상인들이 넘치던 상업 도시였다.

그러던 것이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피해 이주한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했고, 그들이 물러간 뒤 1920년대에 예술가 마을이 들어섰다. 그래서인지 센텐드레 골목에선 이따금 세르비아인들이 쓰는 키릴 문자 간판이 눈에 띈다.

작은 돌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헝가리 센텐드레 거리.

센텐드레는 크고 작은 갤러리나 미술관이 약 20곳 정도 되지만 그 가운데 헝가리를 대표하는 여성 도예가 코바치 마르기트 미술관이나 헝가리 인상파 화가 페렌치 카로이 미술관이 볼만하다.

아몬드 가루·달걀·설탕으로 만든 과자 재료 '마지팬' 박물관도 볼거리다. 마지팬과 화이트 초콜릿만 사용해 만든 높이 2m, 무게 80㎏짜리 마이클 잭슨 조형물이나 헝가리 국회의사당, 동화 '101마리 달마시안'의 한 장면 같은 정교한 전시물을 대하면 어른들까지 눈이 휘둥그레진다.

굳이 미술관을 들르지 않아도 센텐드레에선 곳곳에 예술적인 정취가 배어 있다. 이른 아침부터 금속을 깎아 대담한 디자인의 보헤미안풍 목걸이를 만들고 있는 장인, 직접 그린 작품을 밖에다 내건 채 가게 안에서 열심히 붓질을 하고 있는 화가도 볼 수 있다.

헝가리 센텐드레 장인들이 만든 목걸이.

작은 돌로 정교하게 만든 길 앞에 아무렇게나 전시한 투박한 도자기 인형도 여성적인 시각으로 서민의 생활을 묘사한 예술가 코바치 마르기트의 작품을 닮았다.

센텐드레에는 이름난 레스토랑이나 찻집이 많다. 구경을 하다 지치면 아무 음식점에나 들어가도 실패할 확률이 적다. 1734년에 지은 헝가리 레스토랑 '바르사치 포가도'처럼 부다페스트 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음식점도 있다.

시간의 흐름이 정지한 듯한 골목, 독특하고 이색적인 장신구, 유명하진 않지만 진지하게 작품 세계를 창조하는 무명 예술가와 그들이 빚어내는 창의로운 정서, 여기에 더해 미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과 풍부한 와인까지…. 당신도 오늘 하루 이곳에선 일상을 잊고 예술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