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여러분의 딸입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낸시 펠로시(Pelosi·70) 미 하원 의장은 10일 워싱턴 DC의 의사당에 모인 90세 안팎의 할머니 200여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들은 2차 세계대전의 '여성 공군 조종사들(WASP· Women Airforce Service Pilots)'로 미군 항공기를 조종한 최초의 여성들이다. 미 의회는 이날 WASP 출신 참석자 약 200명에게 미 의회가 민간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영예인 '의회 금메달'을 수여했다.
할머니 중 몇명은 휠체어를 탔고, 많은 사람들은 어두운 청색의 2차대전 당시 제복을 입고 있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매사추세츠에서 온 준 벤트(Bent) 할머니는 휠체어를 탄 채 전사한 동료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펠로시 의장은 "여러분은 자랑스러운 미국 여군의 선배들이지만 너무 오래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WASP 요원들은 정식 군인이 아니었다. 전사해도 성조기로 관을 덮을 수 없었다. 이날 의회 금메달 수여식을 추진한 케이 베일리 허치슨(Hutchison) 연방 상원 의원은 "여성 조종사들은 국가가 전사자 장례비도 지원하지 않아 동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장례를 치르곤 했다"며 "1944년 WASP가 해체된 뒤 텍사스주의 비행장에서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요금마저 자기 돈으로 지불해야 했다"고 말했다. 참전용사 연금과 예우를 받게 된 것도 2차 대전 종전 뒤 30년이 넘게 지난 1977년부터였다.
하지만 여성 조종사들은 남자 사관후보생과 동일한 훈련을 거쳤다. 임무는 남자 군인들보다 더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응급환자 수송은 기본이었다. 야포사격 훈련용 표적물을 항공기 뒤편에 매달고 비행하며 가상 표적 역할도 했다. 새로 지은 활주로가 안전한지 확인하는 시험 비행도 맡았다. 이 과정에서 공식 기록으로만 38명이 전사했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WASP 요원은 모두 1000여명이었고, 현재 생존자는 300명 안팎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휴즈 킬런(Kilen·85) 할머니는 "동료들과 그 가족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텍사스주에서 온 디니 패리시(Parrish·88) 할머니는 "우리의 임무는 남자 조종사들이 전장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비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어요. 국가가 우리를 필요로 할 때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