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은 간결하게, 색(色)은 대담하게. 겉에 입는 코트는 직선을 고르고, 속에 입는 드레스는 곡선을 택한다. 요즘엔 누구나 아는 멋 내는 비법 중 하나지만, 1990년대 초만 해도 이처럼 절제된 패션을 보여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앤디앤뎁(Andy&Debb)'은 바로 이런 무심한 패션의 원조(元祖)격 상표다. 모두가 과장된 패션을 칭송할 때, 1999년 김석원과 동갑내기 아내 윤원정은 '로맨틱 미니멀리즘(romantic minimalism·절제된 여성미를 추구하는 스타일)'을 주창했다. 실루엣을 강조한 드레스, 장식 하나 없는 직선으로 떨어지는 외투. 디자이너 김석원씨는 "처음 매장에 옷을 걸어놨을 땐,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다 '이거 수입 옷이냐'고 물었다. 그땐 사람들이 그만큼 우리 옷을 낯설어했다"고 말했다.

김석원(왼쪽)과 윤원정 부부.

그 후로 꼭 11년이 지난 지금, '앤디앤뎁'은 뉴욕컬렉션을 네 차례 열고, 뉴욕과 유럽, 중동지역에까지 옷을 판매하는 회사로 거듭났다. 최근엔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 심사위원으로 출연, 대중에게까지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들의 옷은 거창한 실험이나 전위적인 쇼엔 적합하지 않다. 런웨이를 걷던 모델이 훌쩍 거리로 내려와 도심 한복판을 활보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야말로 실용적인 옷을 추구한다.

대신 이들은 남다른 실루엣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드레스의 절개선을 가슴부터 직선으로 떨어지게 하거나, 둥그스름한 어깨를 강조하고 허리라인을 가슴 바로 아래에서 잡아주는 방식은 여성을 한층 훤칠하고 날씬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색채추상화가 마크 로스코(Roth ko)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점프수트도 특징. 한 벌의 옷이지만, 배색을 까다롭게 계산해서 마치 블라우스와 바지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 대담하고 활동적인 여성을 표현하기 위한 이들만의 방식이다.

2010년‘앤디앤뎁’봄₩여름 컬렉션. 간결한 실루엣, 넓은 직선의 칼라 장식으로 활동적이면서도 우아한 여성을 표현했다.

김―윤 부부는 뉴욕 프랫(Pratt) 인스티튜트 패션디자인학과에 다니던 시절, 학교 동년배 친구로 처음 만났다. 김씨는 윤씨에게 이런 말로 구혼(求婚)했다. "같이 우리 이름을 걸고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브랜드 하나 만들어 보자." 학교를 졸업하고 두 사람은 각자 뉴욕 패션회사에 취직했다. 4년 넘게 일하면서 돈도 제법 모았다. 안정된 생활. 한데 처음 가졌던 꿈을 잊을까 겁났다. 두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1999년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에 '앤디앤뎁'이란 이름의 작은 매장을 냈다.

2008년엔 처음으로 '2009 봄·여름 뉴욕컬렉션'에 진출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놓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두 사람은 막상 뉴욕에서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우린 시간이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현지 스태프들은 '그저 일단 기다려보라'고만 하더라고요. 모델 섭외도, 피팅도, 초청장 인쇄도 2~3일 안에 끝낸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적응하는 데 꽤 걸렸죠(웃음)."

당시 이들이 내놓은 건 컵케이크 포장지를 본떠 만든 플리츠스커트. 현지 사람들은 간결하지만 화사한 패션에 찬사를 보냈다. 올해 2월에 이들이 내놓은 건 밍크조각과 가죽, 니트를 조각조각 연결한 패치워크. 턱시도 정장처럼 보이는 세련된 점프수트, 구조적인 미니 드레스를 선보여 해외 언론에 "한발 더 나아갔다"는 평을 들었다.

김씨는 "그동안 유명인이나 배우를 위해 옷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아내에게 가장 입히고 싶은 옷을 만들어 온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에게 어울리는 옷을 만들 때 항상 가장 좋은 평가를 받더라고요. 제게 패션은 곧 제 인생의 동반자(同伴者)를 옷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