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유가 폭등으로 미국에서 휘발유 값이 갤런당 4달러(L당 1220원 정도)로 뛰어올랐다. 한국에선 휘발유 1L에 2000원을 넘었다. 그러자 미국인들의 자동차 운전거리가 그 전해보다 1000억마일 줄어들었다. 대중교통 이용 횟수는 3억회나 늘었다. 그렇다면 휘발유 값이 갤런당 6달러, 8달러, 10달러로 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 기자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의 《석유 종말시계》는 유가(油價)가 단계적으로 오를 때의 변화와 해법을 다룬 책이다. 갤런당 6달러 시대가 되면 SUV처럼 기름을 많이 잡아먹는 차들이 사라지고, 8달러가 되면 대부분의 항공사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식이다. 앞에서 언급한 빌의 이야기는 갤런당 20달러(L당 6100원 정도) 시대의 가상 시나리오다.
빌이 사는 세상에선 유가 상승이 더 이상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지 않는다. 석유를 살 이유가 없으니 관심도 없는 것이다. 육상에선 고속전철이, 해상에선 원자력을 동력으로 한 거대 화물선과 유람선이 주된 교통·운송 수단이다. 도심 교통 시스템은 시내전차와 지하철 위주로 바뀐다. 전기자동차는 매력적이고 화려하기는 하지만 값이 비싸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교외에 거주하며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생활방식도 달라져 대부분의 사람이 도심 지역에 오밀조밀 몰려 산다. 그래서 도심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은 대박이 난 반면 교외 주택을 산 사람들은 쪽박을 찼다. 집집마다 지붕에 정원을 꾸며놓고 다양한 채소를 재배해 먹는다.
항공기와 자동차 운행이 줄어들면서 환경이 개선되고 비만과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줄어드는 좋은 점도 있다. 교통비 부담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을 만나기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가까운 지역에 모여 사는 가족들이 늘어난다. 덕분에 가족 간 유대가 강화되고, 자녀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정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이 책의 기본 전제는 유가가 장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 인구가 계속 늘고 있는 데다 중산층 인구는 그보다 더 빨리 늘고 있어 석유에 대한 수요도 계속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뽑아낼 수 있는 석유는 점점 고갈되고 있다. 현재 거대 유전의 생산비가 배럴당 1달러50센트에 지나지 않는 데 비해 캐나다의 오일샌드 같은 새로운 유전지대의 생산비는 60달러가 넘는다.
"값싼 기름으로 즐기던 문명의 파티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저자는 그 변화가 "인터넷 혁명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치솟는 기름값이 문화와 주거·도시·교육의 변화를 몰고 오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저자가 미래 도시의 모델을 인천 송도 신도시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도시 내부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자립형 구조에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과학적 설계와 친환경적 배치 등 앞으로 전 세계가 송도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두바이가 흥청망청 멋대로 건물을 짓고 도로를 깔아서 세운 도시인 반면 송도 신도시는 1791년 워싱턴 DC를 설계했던 피에르 랑팡의 전통을 따라 세세하고 꼼꼼하게 계획됐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에서 예측하고 있는 초(超)고유가 시대의 변화가 그대로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와 다양한 현장에 대한 취재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사례와 근거를 제시하면서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석유를 대신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을 다루면서도 그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유가 변동의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항공산업 몰락 같은 극단적인 변화를 몰고 올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