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정상회담 할 테니 경제 지원하라

"지난 정권, 어떻게 했기에 北이 당연한듯 손 벌리나"

북한이 최근까지 여러 경로로 '남북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측에 보내면서 그 대가로 "쌀·비료 등을 달라"는 옛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는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날 "북한은 작년 10월 김양건·임태희 비밀 접촉 이후 '남한이 원하는 시기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게 해줄 테니 예전처럼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해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와 국군포로·납북자 송환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6·2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정상회담을 (남한이)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줄 테니 (북한에) 경제적 대가를 달라는 의미"라며 "북한은 지난 10년간의 '햇볕 중독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2000년 정상회담은 총선을 사흘 앞두고 발표됐으며 2007년 정상회담은 대선을 두 달 앞두고 이뤄졌다. 2000년 이후 북한은 거의 매년 30만t 이상의 쌀과 30만t 이상의 비료를 꼬박꼬박 받아갔다. 연간 1조원이 넘는 규모다. 한 고위 탈북자는 "김정일이 2001년쯤 '이제 남한 불바다 발언은 하지 마라. 다 우리(북) 건데'라는 식의 발언을 했었다"고 전했다.

지금 청와대와 안보 부서에선 "지난 정부에서 정상회담을 어떻게 추진했기에 북한이 경제적 대가를 당연한 듯 요구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② 나무 심게 해 줄테니 식량 달라

'정상회담·지원 분리' 우리 방침, 김정일에 전달 안됐을 가능성

최근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 등이 추진한 '북한 나무 심기'도 북측이 "나무 심게 해줄 테니 대규모 식량을 달라"고 요구해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북한의 대남통인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우리 정부 당국자와 나무 심기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이달 초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하지만 원 부부장이 나무 심기에 동의해주는 대가로 쌀과 비료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우리 정부는 원 부부장의 접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북한이 옛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것과 관련, '돈 주고 정상회담 사지 않겠다'는 우리측 의지가 김정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비롯된 문제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정상회담 대가는 없다'고 재차 강조한 것은 김 위원장이 직접 들으라고 한 얘기"(정부 고위 당국자)란 설명이다. 남북 회담 경험이 많은 한 당국자는 "비밀 접촉을 하다 보면 서로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며 "'햇볕'에 익숙한 북한 대표들이 현 정부의 메시지를 과거 방식으로 이해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옛날처럼 핵문제는 미국과 논의하고 국군포로·납북자문제는 '고향 방문' 수준으로 때운 뒤 1조원대 지원을 챙기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햇볕 중독증'을 버리지 못하면 당분간 우리의 대규모 쌀·비료 지원을 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은 최근 세미나에서 "북한이 기존 고집을 꺾지 않아 (정권 말까지) 좋은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저 정부가 (남북관계의) 새 틀을 쌓기 위해 5년간 노력했구나'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북한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있다. 북한은 매년 100만t 이상의 식량이 부족하지만 올해는 화폐개혁 후유증이 겹쳐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후계 세습을 위해 체제를 안정시키려면 남한 등 외부 지원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며 "6자회담 진척 등을 봐가며 마지못해 우리 요구에 응할 수 있다"고 했다.

③ 월드컵 공동 응원, 식량 5만t 달라

급물살 '월드컵 남북 이벤트' 北의 돌출 요구에 물건너 가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의 표정이 요즘 계속 어둡다. 세종시 논란 등 정치 현안도 현안이지만 '축구인'으로서 의욕적으로 지원하던 남북 공동 응원단과 남북 축구 교류전 등 일련의 '월드컵 남북 이벤트'가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이다. 민간 단체들은 오는 6월 개최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사상 처음으로 남북 축구가 동반 진출한 것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남북 공동응원단' 구성을 추진해왔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통도 이를 공식 건의사항에 포함시키는 등 분위기를 띄웠다. 이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을 겸하고 있는 정 대표도 공동 응원단 파견과 관련해 통일부 등의 지원을 요청하는 등 가능성을 타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 대표는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남북 축구 교류전을 여는 방안을 축구협회 등과 논의했고, 평양에 실무 협상단을 파견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측이 남북 공동 응원단과 관련, 민간 루트를 통해 "응원단 전원의 항공료, 현지 숙식비와 별도로 식량 5만t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일이 어려워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가를 지불하는 식의 남북 교류에 대해 정부가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 정상회담 등의 '빅 이벤트'를 앞두고 찔끔찔끔하는 식의 남북 교류에도 소극적이어서 공동 응원단과 남북 축구 교류전 등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25일 "향후 남북관계 상황 및 민간 단체의 여건 등을 고려해 검토하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물리적으로 힘들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정 대표는 최근 한 모임에서 남북 축구행사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다가 벽에 막힌 것에 대해 상당히 낙담해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남북 축구 이벤트가 성사됐을 때 그 후광효과를 '정치인 정몽준'이 누리게 되는 것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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