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루스채플관에서 열린 졸업식. 학사모를 쓴 20대 젊은이들 사이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었다. 미국의 대형 한의대 중 하나인 사우스베일로 대학을 세운 박준환(80) 이사장이었다. 55년 만에 졸업장을 품에 안은 박 이사장은 낮은 목소리로 "졸업식 내내 지난 55년 인생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대구의 한 시골마을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박 이사장은 1950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낭만은 1950년 6월 25일 포성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서울역 주변에 살던 박 이사장은 방바닥을 울리는 포성에 깜짝 놀라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봇짐을 머리에 인 피란민들이 길게 늘어서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사흘 후 북한군 탱크가 서울을 점령했다.

22일 오전 연세대 루스채플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박준환 이사장(오른쪽)이 김용학 사회과학대학장(왼쪽)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해 9월 국군이 서울을 수복했을 때 그는 둘째형(당시 23세)과 함께 자원입대해 북한군과 싸웠다. 이듬해 11월 그에게 통지문 한장이 도착했다. 형이 강원도 인제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통지였다. 그는 "한동안 형 사진을 보면서 울기만 했다"고 했다.

1955년 9월 제대한 그는 마지막 학기를 마치지 못한 채 서둘러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전공은 경제학을 택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하다고 생각했다. 남가주대(USC)에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생활비와 기숙사비는 직접 벌어서 대야 했다. 그는 "매일 남의 집 잔디를 깎고, 주말이면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고, 방학 때는 농장에 나가서 돈을 벌었다"고 했다. 유학생활 8년째인 1962년 그는 남가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정을 꾸려 4남매를 둔 가장이 된 그는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일했다. 그는 "한국이 수출을 늘리려면 수공업에서 벗어나 중공업과 정보산업에 주력해야 한다는 논문을 여러 차례 한국 정부에 보냈다"고 했다.

연세대는 졸업까지 한 학기가 모자란 그에게 "명예 졸업장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부하고 작년 가을 학기에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사회봉사 과목을 수강, 8학기를 끝낸 뒤 이날 모교 졸업장을 받게 됐다.

박 이사장은 "졸업을 하지 못하고 전사한 둘째형 묘소에 이 졸업장을 바치겠다"고 했다. 그의 형은 연세대 사학과 48학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