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 비아레조에서 열린 제137회 비아레조 카니발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를 이슬람 정치 지도자인 술탄으로 풍자한 인형 등 정치인을 풍자한 종이 인형들의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2월1일 보도
한국의 지역 축제는 1100개가 넘는다. 이 중 900개 가까이가 1995년 이후 생겼다. 역사가 짧으니 인지도도 낮다. 대부분의 축제는 방문객 1만명도 유치하지 못해 축제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독일 옥토버페스트, 일본 삿포로 눈축제, 브라질 리우 카니발처럼 국가나 도시를 떠올리면 바로 연상되는 축제가 한국에는 거의 없다. 이달 초 올해도 어김없이 막을 올린 이탈리아 비아레조의 축제는 벌써 137번째를 맞았다.
1년에 한 번이라 해도 137년째가 됐다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정치인과 종교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끈질긴 생명력의 근원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를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 조니 뎁으로 묘사한 커다란 인형이 등장했다. 가위로 된 손을 들고 기이한 웃음을 짓고 있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모습은 그가 일자리를 줄였다는 걸 비꼰 것이다. 로마노 프로디 총리 때도 같았다. 총리가 배에 SOS가 적힌 튜브를 두르고 주방용 여과기 안에서 노를 젓는 인형이었다. 물에 뜰 수 없는 여과기 위에서 노를 젓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묘사해 총리의 실정(失政)을 풍자한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자유의 여신상을 패러디한 부시 대통령이 손가락으로 이탈리아 국기를 차려입은 이의 엉덩이를 찌르는 인형도 있었다. 외국의 정치인들도 풍자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라는 얘기다.
너비 14m에 높이 20m에 이르는 것도 있을 정도로 이들 인형들은 덩치가 큰 것이 특징이다. 정치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커다란 인형들은 국민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인형이 이렇게 크면 무거워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텐데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인형의 재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1925년 이전만 해도 축제에 등장하는 인형들 재료는 대부분 석고나 나무 등이었다.
이런 재료들을 이용해 조각가, 대장장이, 목수 등이 총동원돼 퍼레이드 인형들을 만들었기에 규모에 한계가 있었다. 우리 닥종이 공예처럼 종이반죽으로 인형을 만드는 방법이 1925년에 도입되면서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퍼레이드 인형 규모가 커지면서 축제 명성도 높아졌다. 1954년 이탈리아 내에서 첫 방송을 탄 뒤 4년 후 유럽으로 확대됐고, 위성방송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전 세계로 중계되고 있다.
비아레조 축제는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토스카나주 북부의 조그만 도시 비아레조로 끌어들인다. 인구 6만명의 비아레조는 우리로 치면 서울의 한 구(區) 인구의 10분의 1정도밖에 안 되는 곳이다.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지니게 된 비아레조 축제가 생긴 계기는 뭘까. 1873년 경제적 여유가 있던 마을 청년들이 장식 수레를 띄워 퍼레이드를 하자고 뜻을 모은 것이 축제의 시작이 됐다.
1959년엔 카니발 장식수레가 모두 불에 타는 위기도 있었지만 이듬해 성대하게 열리면서 재기했다. 비아레조 카니발에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유명인사들 중에서 불쾌감을 내비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축제가 100년 넘게 풍자와 해학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판소리·탈춤·마당극 등 해학이 넘쳤던 우리의 축제는 어떨까. 2003년 시작해 서울의 대표축제로 자리잡은 '하이서울 페스티벌'에선 풍자와 해학을 찾기 힘들다.
지방의 다른 축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돈을 대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지원을 받는 마당에 국무총리나 시장·군수·구청장을 축제에서 풍자하기란 쉽지 않다. 비아레조 카니발을 국내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