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쌍둥이 자매가 한날한시에 자신들이 태어난 병원의 간호사가 됐다.

16일 오전 인천 구월동 가천의대 길병원 본관 12층 대강당. 최근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이 병원에서 첫 근무하게 된 42명을 대표해 단상에 오른 황 슬·설·솔·밀 자매 가운데 맏인 슬이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 앞에서 신고식을 겸해 감사 편지를 읽었다.

황 설·밀·솔·슬(왼쪽부터) 자매는 이곳 길병원에서 첫 울음을 울었었다. 그리고 21 년 뒤 태어난 병원에서 간호사로 나란히 사회 첫 걸음을 걷게 됐다.

네쌍둥이와 길병원의 인연은 21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강원도 삼척에서 광부로 일하던 아버지 황영천(56)씨와 동갑 부인 이봉심씨는 결혼 5년째인 1988년 말, 둘째가 임신된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70만분의 1 확률이라는 네쌍둥이. 월세 2만원 방 한 칸에서 살던 부부에게 병원은 "하나만 낳고 나머지는 포기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부부는 모두 낳기로 하고 이씨의 친정이 있는 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출산 예정일 전에 양수가 터졌다. 당황한 병원에서는 인큐베이터가 있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이씨는 길병원으로 몸을 옮겼다. 1989년 1월 11일 네쌍둥이는 이곳에서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왔다. 모두 무사했지만 이젠 입원비와 인큐베이터 사용비가 걱정됐다. 사정을 알게 된 이길여 이사장은 "병원비는 받지 않을 테니 치료받고 건강하게 퇴원하라"고 했고, 퇴원 때는 "아이들이 자라 대학에 입학하면 등록금을 대줄 테니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뒤 이 이사장은 바쁜 생활 속에 이들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2006년 사진첩을 정리하던 중 네쌍둥이가 퇴원 때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는 그때 약속이 떠올라 이들 가족을 수소문했다. 황씨 가족은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었다. 황씨는 광부를 그만둔 뒤 장사와 노동일 등을 하고 있었고, 집안은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될 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잘 자랐고 공부도 잘해 마침 둘은 수원여대 간호학과에, 둘은 강릉영동대 간호학과에 합격한 상태였다. 넷 모두 간호학과에 간 것은 길병원 퇴원 때 이 이사장이 농담처럼 "간호사가 돼 고마움을 사회에 갚게 하시라"고 했던 말을 부부가 가슴에 새겨두었다가 가족회의를 거쳐 결정한 일이었다고 한다.

21년 전 출생 당시의 네쌍둥이와 이길여 길병원 이사장.

합격은 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고민하던 이들에게 다시 행운이 날아들었다. 2007년 이들의 생일을 하루 앞둔 1월 10일 이 이사장은 입학금과 등록금으로 2300만원을 전달해 18년 전 약속을 지켰다. 그 자리에서 학비를 계속 대주기로 한 이 이사장은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모두 길병원 간호사로 뽑아주겠다"는 두 번째 약속을 했다.

아이들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고, 이날 두 번째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행사가 끝난 뒤 자신들이 태어난 분만실을 찾은 이들에게 "태어난 곳에서 다 함께 일하게 된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넷은 쑥스러운 듯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