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소설가

친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모태범 금메달 획득!' 모태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스물한 살의 어린 친구가 우리나라 최초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땄단다. 올림픽 5회 연속 출전에 빛나는 노장 이규혁, 토리노 올림픽의 동메달리스트 이강석도 아닌, 모태범이다.

점심을 먹으며 TV를 통해 그 장면을 반복해서 보았다. 모태범은 활짝 웃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머리에 초록색 버섯돌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태극기를 펄럭이며 새처럼 날고 있었다. 눈물 어린 감격에 벅차 "아아아아악! 이게 웬일입니까!"를 연발했던 건, 오히려 전직 국가대표 스케이터이자 방송 해설위원이었던 제갈성렬이었다.

수영하는 박태환이 금메달을 깨물어보던 그 기념비적인 퍼포먼스는 이번 올림픽에서 1500m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딴 이정수에게도 볼 수 있었다. 배드민턴 국가대표 이용대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확정 지은 직후, 카메라를 향해 멋진 윙크를 날렸다.

김연아의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가 가장 중점을 둔 훈련은 '어떻게 하면 연아가 행복한 스케이터가 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스케이트를 충분히 즐기고 싶다는 그녀의 말은 아마도 진심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 옛날, 라면을 먹고 뛰던 악바리 소녀 임춘애의 '헝그리 정신'과는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울려고 해도 눈물이 안 난다'는 모태범의 말처럼 그 아이들의 눈에는 눈물보단 웃음이 고여 있다. 가슴 터질 듯한 국가에 대한 막중한 의무보단, 자신의 과제를 해냈다는 개인적인 만족감이 그들을 춤추고 웃게 하는 것이다. 금메달이 아니란 이유로 서러워하던 과거 선배들의 얼굴은 이제 '은메달이라도 좋아. 내 기록만 깬다면!'이란 즐거움의 장으로 바뀌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가 만면의 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던 얼굴은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다. 더 이상 은메달을 따고도 서럽게 우는 선수를 보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 탓이기도 할 것이다.

가히 '한(恨)의 올림픽'이라 해도 무방할 금메달 퍼포먼스였다. 애국가가 울리면 선수가 울고, 온 나라가 통곡했다. 혹독한 훈련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흘렀고, 가족의 증언이 신앙 간증처럼 애국가 사이에 비장하게 흘렀다. 체력도, 체격도 한 수 아래였던 그 옛날, 올림픽은 우리에게 뭔가 악에 받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토록 잘생기고 멋진 이 아이들은 우는 대신 웃으며 새로운 감성의 시대를 선포한다. '말'이 아닌 '태도'라는 보다 은유적이고 세련된 표현법으로 말이다.

이것은 변화다. 살벌한 경쟁을 축제로 만드는 유연함, 콤플렉스 없는 자신감, 자유로운 상상력. 그야말로 'G(글로벌)세대' 가치의 육신화다.

우울한 건, 이렇게 긍정적인 젊은이들이 사회에 나오면 '88만원 세대'로 불린다는 거다. 스스로도, 우리도 그들을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정말 그들은 88만원 세대일 뿐인 것일까. 그들을 규정할 좀 더 다양한 규칙과 언어가 존재한다면 이들을 볼 때 드는 이상한 유리감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에너지는 선배들이 만들어낸 편협한 숫자의 울타리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놀라운 스물한 살'들이 올림픽 바깥에서도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선배들이 새로운 틀을 함께 고민해 줄 때다.

[찬반토론] 샤우팅 해설, 박진감? 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