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중반 국내 대기업의 중국 주재원들은 중국측 인사들로부터 '한국에 대한 3가지 두려움(三�Q)'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중국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전임(前任) 대통령들의 잇따른 감옥행이 하나였다. 1978년부터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한국 축구, 세계 바둑대회 불패 신화의 주인공 이창호를 둔 한국 바둑이 나머지 둘이었다.

경제 발전으로 공산당 통치의 효율이 인정되는 중국에서 전직 대통령의 감옥행은 더 이상 두려운 일은 아니다. 중국 바둑이 우위를 보이면서 바둑의 공한증(恐韓症)도 극복됐다. 마지막 공한증의 대상이었던 한국 축구. 오죽했으면 국영 CCTV가 중국팀의 패배를 예상하고 10일 경기를 생중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마저도 중국 대표팀이 한국 대표팀에 3대0의 완승을 거둠으로써 막을 내렸다.

중국 축구가 32년 만에 한국에 승리하면서 공한증을 털어버린 것은 '한국=중국이 좇아야 할 대상'이라는 시대의 종지부를 의미한다. 김동진 포스코 중국 법인장은 "중국 축구의 승리는 한국이 그동안 누렸던 일방적인 우위의 시대가 확실히 끝났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며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관계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중국 내 한국 기업인들은 한국 축구가 번번이 중국에 이기는 데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져왔다. 축구 경기가 있은 다음 날 중국 기업인들을 만나면 그쪽에서 먼저 축구 이야기를 꺼내며 "이번에도 한국한테…"라는 어색한 인사말을 하곤 했다. 이 경우 한국 기업인들은 대체로 "조만간 중국이 이기는 날이 꼭…"이라며 억지 위로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인들은 한·중 축구 경기의 가장 이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무승부라고 입을 모아왔다. 이젠 이 공식이 깨진 셈이다.

10일 저녁부터 중국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 승리를 축하하는 댓글이 10만개 이상 달렸다. 취업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20~30대 중국 젊은 층은 이번 승리가 안겨다 준 '민족주의 정서의 세례'에 감격해 했다.

베이징의 한 국내 대기업 임원은 "고양된 민족주의 정서가 경제정책 전반으로 이어져 외국기업에 불리한 규제가 속출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걱정거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