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0시쯤 울산 중구 중앙동 주민센터에 중년의 신사 한 사람이 들어섰다. 키 170㎝가량에 넥타이는 매지 않았고, 짙은 색 반코트 차림이었다. 그는 주민센터 민원상담실 소파에 앉아 직원들이 내준 녹차 한잔을 마시고는 채 5분이 되지 않아 말없이 일어섰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종이가방 하나가 남겨졌다.
종이가방을 열자 90개의 편지봉투가 나왔다. 직원들은 "옥교동의 기초생활수급대상 독거노인 수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했다. 봉투 안에는 5만원씩(5000원권 6장과 1000원권 20장)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전체 금액은 450만원이었다.
김영호 중앙동장은 "2004년 추석 때부터 매년 설과 추석을 3~4일 앞두고 옥교동(작년부터는 옥교동과 성남동이 합쳐져 중앙동이 됐다) 주민센터를 찾아온다"고 했다. 올해로 7년째다. "그간 내놓은 돈이 약 6000만원"이라고 전했다.
김 동장은 매번 정중하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느냐, 어디 사시는 분이냐'고 물어보지만, 그는 "옥교동 독거노인들에게 전해 달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간다고 한다. 2년 전쯤부터는 입소문이 나 언론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내 이름이 사회에 알려지면 그 순간부터 기부를 중단하겠다"며 "익명을 지켜 달라"는 당부도 덧붙인다고 한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나이는 일흔 가량으로 보이고, 옷매무새는 검소하고 단정했으며, 염색을 하는지 흰머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예전 중구 관내에 사셨던 것으로 짐작되고, 지금은 남구 어느 곳에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 직원 김봉익씨는 "마음만 먹으면 그분의 신원을 밝혀낼 수 있지만, 궁금증을 푸는 것보다 이 같은 따뜻한 일이 계속되기를 더 바란다"고 했다.
중앙동 주민센터는 이날부터 옥교동 관내 독거노인 90명에게 봉투 전달을 시작했다. 직원들은 "봉투에 1만원권 없이 5000원과 1000원권만 담은 것은 씀씀이가 크지 않은 독거노인들의 사정을 세심하게 배려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봉투를 건네받은 독거노인들은 "명절이 되어도 찾아보지 않는 자식이나 일가 친척보다 이름 모를 그분이 더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직원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