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은 절대 두 번 맞지 마세요. 이건 진짜 죽는 총이 아닌 건 알죠? F학점 두 번이면 학교생활은 그걸로 끝이에요."
지난 3일 오후 4시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관 강의실에서 외대 탈북자 모임 'NK(North Korea)' 회원인 국제통상학과 2학년 김민철(가명·27)씨가 파워포인트로 탈북자 신입생들에게 학사제도를 설명했다.
17명의 탈북자 새내기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설명을 들었다. 순간 김씨 입에서 새내기들 귀에 익숙한 말이 튀어나왔다. "이중(二重) 전공이 아름차다면 부전공을 선택해 학습 강도를 낮출 수 있지요." 그러자 강의실 뒤쪽에 앉아 있던 다른 선배가 "'아름차다'가 뭐야. '벅차다'지. 아직도 적응 못했남?"이라고 했다. 김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이 빨개지자 새내기들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외대 NK 모임은 2008년 결성됐다. 탈북 학생 5명이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모였다. "이 모임 회원들이 남한 생활에 빨리 적응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회원이 늘었다. 현재는 탈북학생 회원이 90명이나 된다. 탈북자 중에는 중국어·러시아어나 동구권 언어 전공자들이 많아 외대 입학생이 특히 많았다.
모임 창립을 주도한 회장 김영광(가명·34·러시아어과 2년)씨는 "수강신청부터 리포트까지 일반 학생들이 거뜬히 해내는 것도 우리에겐 너무 어렵다"며 "대학생활 정보를 나누고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고 했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 때 생활하면서 느낀 새로운 문화나 적응하기 어려운 점들을 털어놓는다. 갈색 파마머리에 롱부츠를 신은 세련된 용모의 박은영(가명·21·중국어과 2년)씨는 "이 모임에서 '커피숍에서 친구를 만나면 쉽게 친해진다'는 말을 듣고 얼마 전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친구랑 커피숍에서 만나고 있다"고 했다. 작년 학점이 4.5 만점이었다는 박씨는 "공부벌레는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날 신입생 환영회에 모인 탈북 대학생들은 남쪽의 일반 '대딩'(대학생)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한 여학생은 7㎝나 되는 하이힐을 신었고 일부 학생들은 연방 책상 밑에서 휴대폰으로 친구들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 모임은 재작년부터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와 전직 국회의원, 사업가 같은 저명인사 24명을 초빙해 강연을 들었다. 강사들은 '성공하는 법' '시장경제를 알자' 같은 주제로 강연을 했다. 김민철씨는 "처음엔 자본주의가 살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강연을 들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며 웃었다. 김씨는 지난 학기 국제통상학과 수석을 차지했다.
이 모임은 다른 대학생들처럼 봉사활동도 한다. 작년 2월 설을 맞아 동대문 쪽방촌의 독거노인 10명을 방문해 십시일반으로 모은 40만원을 전달했다. 회장 김씨는 "회원들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우리보다 더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고 깨달았다"고 했다.
신입생 백성철(가명·26·중국어과)씨는 "북한에서 배용준과 이승연이 나왔던 드라마 '첫사랑'을 보면서 늘 한국 캠퍼스 생활을 동경했다"면서 "영어도 배워본 적 없고 한국 표준말도 서툴지만 이 모임 때문에 걱정 없다"고 했다. 백씨가 선배 박은영씨에게 "이성(異性) 친구를 잘 사귀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박씨는 "탈북자라는 점을 숨기지 말고 친구들에게 너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라"고 충고했다.
이 모임을 지도하고 있는 정치외교학과 서경교(50) 교수는 "처음엔 '뭉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변해가고 잘 적응하는 모습에 나도 감동받았다"며 "올 한 해 지도교수를 더 하며 학생들을 도울 생각"이라고 했다.
오후 5시 신입생 환영회가 끝나자 분주히 가방을 싸는 신입생과 재학생들 앞에서 김 회장이 한소리 했다. "잠깐! 다들 뭐합니까? '1차'가 끝났으면 '2차'를 가야죠. 여기선 기본입니다. 신입생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참(전원참석)'인 거 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