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세계 하늘에 우리 노선을 만들겠다'며 동분서주하던 모습이 생생해요. '하늘을 나는 꿈'에 모든 걸 걸었던 아버지가 이제라도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좋겠어요."
신미봉(66)씨는 우리나라 초기 항공산업의 개척자인 신용욱(1901~ 1961)의 막내딸이다.
신용욱은 한국 최초의 자가용 비행기 소유자로,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하고 1948년 국내 최초의 민간 항공사인 대한민국항공사(KNA)를 설립한 인물이다. '항공의 날'인 10월 30일도 1948년 KNA가 서울~부산 국내선에 처음 취항한 날이다. 신용욱씨는 우리 언론사들이 영세하던 시절, 항공사진 촬영 및 오지의 이재민 구호품 전달 등에 기여하기도 했었다.
신미봉씨는 미국 이민 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와 요즘 아버지와 관련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 비행일지와 사진, 당시 신문 기사와 KNA 직원들의 소지품까지 다양하다.
"한국에 와 보니 아버지가 친일파 명단에 올라 있더군요. 태평양전쟁 때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했기 때문이래요. 전 재산을 우리나라 항공산업 개척에 쏟아부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없었어요. 고향인 전북 고창에 다 쓰러져가는 공적비 2개가 전부였어요."
신미봉씨가 여대를 졸업하고 가족과 미국으로 떠난 것은 아버지의 비극적 최후 때문이었다. 고등학생이던 1961년, 실종 며칠 만에 한강에 떠오른 아버지 시신을 보았다고 한다. KNA는 1958년 '창랑호'가 납북되면서 한 번 파산을 겪었고, 그 뒤로도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실종 전, 신용욱은 부정 축재자로 투옥됐다가 이후 무혐의로 석방됐다.
"고창의 만석꾼 외아들이 항공에 미쳐 그렇게 생을 마감한 겁니다. 당시엔 자살이라고 했지만, 모르는 일이죠. 아무튼 그 때문에 우린 한국을 떠났어요. 회사는 망하고 빚만 떠안은 채 온 가족이 쫓기듯 갔습니다."
그가 고국에 돌아온 것은 더 늦기 전에 아버지 업적을 정리해 알리자는 생각 때문이다. 인천공항 같은 적절한 곳에 1평 공간이라도 얻어 아버지 유품과 당시 자료를 전시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항 역사가 시작된 지 벌써 60년이 넘었어요. 5년 전 '항공의 날'에 초청받아 갔지만, 그날의 주인공 격인 신용욱이란 사람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어요.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과거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우리들의 풍토가 안타까운 거예요."